항목 ID | GC01702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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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元九 |
영어음역 | Yi Wongu |
영어의미역 | Yi Wongu |
이칭/별칭 | 물재(勿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나태주 |
[정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
[활동사항]
1913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였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서울방송국에서 근무하였으며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청주고등학교와 공주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9년부터 1971년까지 공주사범대학 교수로 근무하였다. 공주사범대학 교수로 재임하는 동안, 공주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교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공주사범대학 교수 시절 시회(詩會)란 문학 동호회를 결성, 주도하여 이재복, 임헌도 등 교수 및 지역 문인인 김구용, 정한모, 김상억 등과 활동했으며 임강빈, 임성숙, 최원규 등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공주문화원 이사(1954~1972)를 역임하면서 6·25전쟁 이후 공주 지역의 문화 발전에 초석을 놓았으며 1972년 3월 31일 타계했다.
[저술 및 작품]
유고 시집으로 『바람의 노래』(창학사, 1980년)가 출간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6년 11월 15일 공주시 웅진동 공설운동장 구역 안에 물재이원구시비(勿齋李元九詩碑)가 건립되었다. 시비에는 「종(鐘)」이란 작품이 새겨져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은 종(鐘)이 울리는 날/ 많은 사람들이 곱게 차리고/ 종소리를 따라 언덕을 올라간다/ 멀리 스러지는 음향(音響)을/ 따라갈 수 없는 그들은/ 빈 가슴을 쥐고 언덕을 내려온다/ 나는 별이 환한 나의 작은 방에서/ 가슴에 울리는 종(鐘)소리를 안고/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나를 보고 있다.”
또한 1996년 11월 15일 물재이원구시비건립추진위원회 명의로 임강빈이 남긴 음기(陰記)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물재 이원구 선생은 공주사범대학(1946년 개교) 초창기에 교수로 부임, 현대시를 강의하였고 몸소 시작(詩作)에도 몰두하였다. 또한 시회(詩會)를 만들고 이끌어간 분이기도 하다. 물재 선생은 문단에 오를 기회가 있어도 끝내 이를 마다하였고, 시를 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다만 수많은 제자들의 등단을 낙(樂)으로 삼았다.
그 분의 겸허(謙虛), 무욕(無慾)의 자리가 너무나 커서 우러러보일 뿐이다. 선생의 시는 주지적(主知的) 서정성을 띠었으며, 자의식(自意識)이 강했고, 존재(存在)의 미학(美學)을 추구하였다. 선생은 공주를 사랑했고, 공주사범대학 및 사대부속 중·고등학교에 깊은 애정을 쏟았다. 이에 선생을 잊지 못하는 뜻있는 사람들의 정재(淨財)와 문하생들의 성금을 모아 이 시비(詩碑)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