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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566
한자 佛像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집필자 조인진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 있는 불교의 예배 대상을 조성한 조각상.

[개설]

불상(佛像)이란 불교의 교리에 의한 예배 대상을 석재나 금속 또는 흙이나 나무 등의 시각 매체를 통하여 조성한 조각상을 말한다. 엄격한 의미로는 붓다, 즉 여래(如來)의 존상만을 의미하나, 넓은 의미로는 보살상(菩薩像), 나한상(羅漢像), 조사상(祖師像), 천왕상(天王像), 명왕상(明王像) 등 불교 교리에서 말하는 모든 예배 대상을 포함한다. 이들은 상을 만드는 재료에 따라 석불·금동불·철불·소조불·목불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군산 지역에는 동국사 소조 석가여래 삼존상을 비롯하여 불주사, 성흥사, 은적사, 일광사 등의 사찰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또한 창오리축산리, 중앙로에 석불상이 존재하고 있다. 이 유적들은 군산 지역 불교 문화의 속성은 물론, 불교 유적이 존재할 수 있었던 사회적 기반을 추정할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고려 시대의 불상]

군산 지역의 고려 시대 불상은 성흥사 청동 관음보살 입상을 제외하고 모두 석불이다. 고려 시대 군산 지역의 불교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음에도 대부분의 석불이 방치 또는 멸실되는 등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 있어 대책이 매우 시급하다.

성흥사 청동 관음보살 입상은 성흥사 대웅전 건물이 붕괴된 자리에서 크기가 40㎝ 가량 되는 청동 보살 입상과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불상은 크기가 60㎝ 가량 되게 조성되었는데 보살상의 기단 뒷면에는 ‘성거산천성통화28년(聖居山天聖統化二十八年)’이라는 명문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1010년(고려 현종 1)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청동 보살 입상의 조각 수법은 기단부는 팔각의 이중 기단으로 되어 있으며, 상대와 하대의 사이에 연결된 부분은 안상으로 처리되어 있다. 기단 위의 대좌는 16엽의 길쭉한 복련으로 조각되었고 대좌 위에 오른손에 연꽃 봉우리를 받쳐 들고 있는 관음보살입상이 세워져 있다. 보살의 보관에는 여래상이 새겨져 있으며 오른손은 쳐들어 연꽃 봉우리를 들고 있고 왼손은 손목 바로 윗부분에서부터 유실되었다. 도톰한 볼과 날씬한 콧날, 가늘게 뜬 눈, 가느다란 연꽃잎 대좌, 단순하면서도 딱딱해 보이는 옷 등에서 고려 시대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광주 선암사 성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중앙로 석조 여래 입상은 육계가 높고 소발이며 삼도가 뚜렷하다. 백호는 없고 얼굴 부분이 심하게 마멸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원만하고 듬직한 모습이다. 통견의 법의 주름은 타원형을 그리며 흘러내렸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내려 자연스럽게 손을 펴서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올려 보주를 들고 있다. 방형의 대좌는 특별한 문양이 없고 투박하다. 전체적으로 불신에 비해 상호가 커 비대해 보이며 법의 주름이 단순하게 처리되었고 신체 각부의 표현이 어색한 점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정읍에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옮겨왔다고 하나 정확히 어떤 사찰에서 옮겨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창안 석불은 현재 성산면 창오리 창안 마을 입구 컨테이너 박스 안에 있는데 원 위치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원래 무속인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불상은 크기가 159㎝로 본래 머리 부분은 결실되어 후대에 다시 조각하여 부착하였다고 한다. 불상의 하부는 컨테이너 바닥 아래에 묻혀있다. 불상의 형태는 새로 만든 머리와 그 위에 씌운 좁은 갓 등으로 인해 더욱 치졸해 보이며 인자하고 근엄한 부처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오른손은 가슴 하단에서 파손되었다. 지금은 거의 방치되어 있어 흉물스럽기까지 하며,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

예산 석불은 본래의 자리가 아닌 이전된 것으로 보이며, 거의 방치된 상태이다. 머리와 다리 부분은 결실되었으며 목 부분은 시멘트로 접합시킨 흔적이 있다. 불상의 법의는 통견으로 옷 주름은 두 손에 걸쳐 있고 아랫배에는 법의의 매듭이 보이며 대체로 좌우 대칭적인 요소가 강하다. 수인은 왼손은 배 부분까지 들어 올려 둥근 구슬을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이를 덮고 있는데 마멸이 심해 자세한 양식을 파악할 수 없으나 고려 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의 불상]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일본식 사찰 동국사에 모셔진 석가삼존상은 군산 지역에서는 불상으로서 유일하게 보물[제1718호]로 지정되었다. 복장 유물에 의해 1650년이라는 정확한 조성 시기, 분명한 조성 주체, 불상 조성에 소요된 시주 물목과 수많은 시주자 등이 조성 발원문에 기록되어 있어 복장 의식 및 사원 경제사, 조선 후기 불상 연구에 기준이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본존 불상인 석가모니불상은 17세기 조선 후기 불교계를 대표하는 호연 태호(浩然 太湖)와 벽암 각성(碧巖 覺性)이 증명 법사로 참여하여 불사를 이끌었고, 이에 화답하듯 천 여명이 넘는 시주자들이 기쁘게 동참해 조성 역사(造成役事)를 마친 17세기 중엽 경의 대표적인 불상이다. 또한 전라도 지역에서 활약하였던 이름이 알려진 조각승 응매(應梅)의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양식적으로 안정감 있는 장중한 신체, 조용하면서 중후한 상호의 표현, 입체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선묘 등에서 높은 종교적, 조각적 완성도를 보이며, 이 시기 불상의 특징인 대중적인 미의식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불상은 본래 군산에서 제작되어 모셔진 것이 아니라 김제 금산사에 모셔졌던 것으로 동국사로 모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주사에는 두 분의 불상이 있는데, 그 중 하나인 불주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은 관음전에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목불상으로, 높이 45㎝, 무릎 폭 35㎝이다. 불주사는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하나 뚜렷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산(山)’ 모양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이 높게 솟아 있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원만하며 가는 눈, 오뚝한 코, 굳게 다문 입 등이 균형있게 표현되었다. 양쪽 귀는 짧은 편이나 목에 3개의 주름이 있어 인자하면서도 근엄한 인상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이 두 팔에서 흘러내려 양쪽 무릎을 덮고 있다. 가슴에는 가로 입혀진 옷의 단이 보이는데 별다른 장식은 없다. 손 모양은 양쪽 손을 수평으로 들어 무릎 위에 가볍게 놓아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을 위로 하고 있다.

불주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의 복장에서는 불상 발원문과 시주기 등이 발견되었는데, 발원문에 의하면 1647년(인조 25)에 이 불상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주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은 조성 연대가 1647년으로 원만한 얼굴, 당당한 어깨, 안정감 있는 무릎 등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있어 조선 후기 불상의 편년작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불주사에 모셔진 또 하나의 불상은 대웅전에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목조 여래 좌상으로, 높이 90㎝, 무릎 폭 64㎝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이 낮게 솟아 있다. 넓적한 얼굴은 원만하며, 가늘고 긴 눈과 큼직한 코 등이 균형있게 표현되었다. 이마 부분에는 동그란 백호(白毫)가 있으며, 양쪽 귀는 짧은 편이나 목에 세 개의 주름이 있어 인자하면서도 근엄한 인상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이 두 팔에서 흘러내려 양쪽 무릎을 덮고 있다. 가슴에는 가로 입혀진 옷의 단이 보이는데 별다른 장식은 없다. 손 모양은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무릎 위에 두어 첫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을 마주 잡고 넷째 손가락을 약간 구부린 형태이다. 개금 불사시 발견된 복장 기록에 의하면, 이 불상은 1666년(현종 7)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전체적으로 자세가 안정되었으며 넓적한 얼굴, 가슴에서 평행으로 가로지른 군의의 표현 등 조선 후기 불상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은적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 석가여래 삼존상은 1629년(인조 7)이라는 확실한 조성 시기를 알 수 있다. 2000년 11월 17일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되었다. 주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 보살로 봉안한 목조삼존불좌상이다. 이 석가여래 삼존상은 주존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을 협시로 모신 전형적인 석가 삼존불의 형식을 따른 불상으로, 방형의 남성화된 얼굴과 블록화된 신체, 밋밋하고 빈약해진 양감과 볼륨감의 표현, 보살상의 정제된 보관과 영락 장식 표현 등 조선 후기 불상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1629년이라는 확실한 조성 시기를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상의 기준작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불상이다.

일광사 소불 좌상은 조선 후기의 불상으로 전체 높이가 20㎝ 정도의 작은 불상으로 돌로 만든 후 개금을 하였다. 얼굴은 신체에 비하여 큰 편이어서 불균형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앉아있는 모습은 단정한 느낌을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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