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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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金氏都事公派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
집필자 | 김두헌 |
입향 시기/일시 | 16세기 전반 경 - 김유성이 해남에서 유배가 풀리자 서울로 올라오던 중 임피에 입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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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김유성 입향지 -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
성씨 시조 | 김린(金璘) |
입향 시조 | 김유성(金有聲)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임피현]에 세거한 성씨.
[개설]
김해김씨(金海金氏) 도사공파(都事)는 16세기 전반 경에 천안 군수를 지낸 김유성(金有聲)이 해남에서 유배가 풀리어 서울로 올라가던 중 임피에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서수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연원]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는 김수로 왕이다. 김수로 왕의 17세손이 통일 신라 헌덕왕 때에 이찬 벼슬을 지낸 김웅원(金雄元)이다. 김웅원의 33세손이 도사(都事)를 지낸 김린(金璘)이다. 김린은 조선 시대 군산에 세거한 김해김씨 도사공파의 파시조이다.
[입향 경위]
김린의 아들 김유성(金有聲)이 천안 군수를 지냈는데, 해남으로 유배를 당하였다가 유배지에서 풀려나 서울로 돌아가다가 임피(臨陂) 동면(東面)에 들어와 거주하였다. 김유성은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長子) 김맹석(金孟錫)의 후손들이 군산시 서수면 일대[축동리, 관원리, 마룡리, 화등리, 서수리, 보석리, 금암리]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후손들은 김유성의 아버지 김린(金璘)이 도사(都事)를 지냈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김해김씨 도사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김유성이 임피에 입거한 시기는 증손인 김개(金凱)가 1594년(선조 27)에 무과에 급제하였다는 족보의 기록으로 보아 15세기 말~16세기 초 무렵으로 추정된다.
[현황]
1984년에 간행된 『김해김씨 세보(金海金氏世譜)』에는 입향조 김유성의 증손자 김개(金凱)와 김개(金凱)의 후손 중에 무과 급제자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김개(金凱)와 그의 아들 김홍기(金弘器), 손자 김호(金灝)와 김협(金浹), 증손 김의신(金義信), 김의양(金義讓), 김의현(金義賢), 현손 김현룡(金顯龍), 김진명(金振溟), 김진필(金振泌), 6세손 김우정(金禹鼎) 등이다. 곧, 김개로부터 6세대 동안 연이어 무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던 것이다. 현재 전해 오는 무과 방목에는 이들 중 김의양(金義讓), 김의현(金義賢) 형제가 1651년(효종 2) 별시 무과에 동방(同榜)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족보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김현룡(金見龍), 김진룡(金震龍) 형제도 1651년(효종 2) 별시 무과와 1672년(현종 13) 별시 무과에 각각 급제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 형제는 무과 방목에 모두 김의신(金義信)의 아들로 수록되어 있다.
『김해김씨 세보(金海金氏世譜)』에 김의신의 아들로 김현룡(金顯龍), 김운룡(金雲龍), 김태룡(金台龍)만 수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족보의 김현룡(金顯龍)과 김운룡(金雲龍)이 무과방목의 김현룡(金見龍) 및 김진룡(金震龍)과 동일인일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군산 지역에 거주하는 김해김씨 도사공파의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정확하게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