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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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徐氏承仕郞公派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
집필자 | 김두헌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44년 - 서경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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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86년 - 서경무 사망 |
입향지 | 선제리 -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선제리 |
세거|집성지 | 선제리 -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선제리 |
성씨 시조 | 서진(徐晉) |
입향 시조 | 서경무(徐景茂)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옥구현]에 세거한 성씨.
[개설]
서경무(徐景茂)[1544~1586]는 대구서씨 (大丘徐氏) 시조(始祖)이며 고려 시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서진(徐晉)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을 지낸 서구(徐九)이다. 1998년에 후손들이 옥구읍 오곡리 산 76번지에 신도비(神道碑)를 건립하였다.
[연원]
대구서씨 (大丘徐氏) 시조(始祖)는 고려 시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서진(徐晉)이다.
[입향 경위]
서경무(徐景茂)가 16세기 후반에 옥구현(沃溝縣)에 이주하여 거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沃溝縣)에 집성촌을 이루며 대대로 거주하면서 대구서씨 (大丘徐氏)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를 형성하였다.
[현황]
서경무(徐景茂)가 옥구현(沃溝縣)에 들어와 거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읍 선제리 일대에 동성(同姓) 마을을 형성하면서 세거하여 왔다. 후손들은 자신들을 대구서씨 (大丘徐氏)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라고 하였는데, 승사랑(承仕郞)은 자신들의 입향조 서경무(徐景茂)의 증조 서구(徐九)이다.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옥구면 선제리 일대에 대구서씨 (大丘徐氏)가 20가구 89명이 살았다고 한다. 이후 대구서씨 의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파악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