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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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劍岩山古壘 |
영어공식명칭 | Keomamsan Goru |
이칭/별칭 | 검암산 보루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성신 |
[정의]
경기도 구리 지역에 있었다고 기록으로만 전하는 성.
[개설]
검암산 고루는 조선 시대 지리지에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에 의병장 고언백이 쌓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검암산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낮은 산으로, 해발 177m 내외의 작은 봉우리들이 동구릉 일대를 감싸고 있다. 그런데 조선 시대의 기록과 달리 검암산 일대에서는 산성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일대가 사적지 보호 구역에 포함되어 있어서 정밀 발굴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조선 시대의 문헌 기록에 오류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조선 시대 지리지가 검암산의 위치를 저마다 서로 다르게 기록한 데다가 검암산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검암산은 수락산의 남쪽 지류로 건원릉의 주산이고, 불암사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자료에서는 불암사의 위치를 불암산으로 기록하고 있는 데다가, 조선 시대의 지리지에는 삼국 시대의 석축 산성인 불암산성에 관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조선 시대 지리지를 편찬할 때 검암산과 불암산을 동일하게 보았거나 잘못 기록했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위치]
검암산은 구리시 갈매동과 구리시 인창동 경계에 있는 산인데, 조선 시대 지리지에 검암산 고루가 검암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검암산 고루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언백이 쌓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기록으로만 전할 뿐 실제로 성의 잔해나 흔적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며, 일대가 조선 왕릉 사적지라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발굴 조사도 안 된 상태이다.
[현황]
검암산 고루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조선 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대동지지』에 "검암산 고루는 산의 서쪽 봉우리 두 곳에 있으며, 선조 임진년에 의병장 고언백이 쌓은 것이다."라는 기록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