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5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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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基錫 |
영어음역 | Seong Gise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인 |
[정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개설]
성기석(成基錫)[1920~1990]은 본관이 창녕(昌寧)으로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이면서 군수를 지낸 성종영(成鍾永)의 5세손이다.
[활동사항]
성기석은 1940년 조선방송국(朝鮮放送局)에 기술직으로 근무할 때 단파수신기(短波受信機)를 제작하여 해외 방송을 청취하면서 아버지를 통하여 이인(李仁)과 조병옥(趙炳玉) 등에게 상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식과 구미외교부(歐美外交部)의 활동을 전하였다.
1942년 8월 개성방송소(開城放送所)로 전근된 성기석은 소장인 이인덕(李仁德)과 함께 단파수신기를 제작하여 미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어 방송을 통하여 연합군의 승전과 광복군의 활동 등 국제 정세를 수시로 청취하여 민족 지도자들에게 전달하다가 1942년 12월 27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3년 9월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무선전신법(無線電信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광명시 가학동 장터말에 묘소와 함께 애국지사 묘비가 있고, KBS 앞에 물망비(勿忘碑)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60년 제2회 방송문화상을 수상하였고, 1990년 정부에서 성기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