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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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會 |
영어공식명칭 | Protestant Church |
이칭/별칭 | 예배당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정의]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개신교인들의 신앙 집단 혹은 예배 공간.
[개설]
광명시에서 개신교 교회는 1903년(고종 40) 5월에 창립된 광명교회이다. 이후 1905년 미국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에 의해 하안동 밤일마을에 세워진 하안교회도 광명시 교회사의 첫 페이지에 해당한다. 이후 서면교회와 온신교회가 생겨났으며 도시화 이후 수백 개의 교회가 설립되었다. 초가집에서 시작된 교회는 오늘날 신도들의 복지 시설까지 갖춘 대형 교회까지 공간과 시설 면에서도 한층 변화되어 가고 있다.
[광명교회]
광명교회는 충청도, 황해도, 서울 말죽거리 등에서 이주하여 광명리에 거주하던 송준호, 김홍서, 홍수범, 홍문필, 한신애, 조은상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가가호호를 다니면서 예배를 하다가 선교사 언더우드와 하안교회 김기현 전도사의 도움으로 1912년 초가집 12평[39.67㎡]에 교회를 만들었으며 1920년 서양식으로 교회를 건축하였다. 당시 광명교회가 자리 잡은 신기촌은 타지에서 온 이주민들이 정착하여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1912년 무렵에는 20여 명, 1921년에는 50여 명으로 교인이 늘어났으나 광복 전에는 4~5명만 남았다가 광복 후 다시 증가하여 1950년에는 32명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광명교회는 목회자를 두지 못하고 신도들의 힘으로 운영되었다. 6.25전쟁이 나면서 서울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교회가 사용되었으며, 1955년 적산 임야를 허락받아 24평[79.34㎡] 규모로 건물을 신축하였다. 1970년 주택공사에서 주택 300동을 세우면서 많은 사람이 이주하여 신도수도 늘어 1973년에는 120명이 출석하였다. 1971년 교회를 신축하고 1988년 다시 지금의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하안교회]
1905년 언더우드가 밤일마을에 살던 박순석의 집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언더우드 목사가 보낸 이낙선, 이용석의 전도로 김연순, 곽덕원, 서은경, 김성환, 박순석 등이 교회를 설립하고 조사 홍성서, 김기현, 이춘경 등이 시무하였다. 1916년 강도 차재명이 시흥, 군포 지역 교회를 순행 전도 목사로 세워 예배를 보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였고 1918년에는 군예빈 선교사와 영등포 교회 장로인 김기현 조사가 활동하였다. 1921년에는 시흥리 교회와 연합하여 1인의 장로를 청원하였고 1922년에는 당회가 조직되어 차재명을 당회장, 김연순을 장로로 하였다. 1924년에는 50여 명의 교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1927년에는 차상진 목사, 1928년에는 김현봉 목사가 있었으며 1929년 김현봉 목사가 사임한 후 차재명을 당회장, 양동익을 전도사로 시무하게 하였다. 1930년에는 광명리 교회와 연합하여 장로 1인을 세웠다. 1932년 발간된 『서면향토지』에는 “광명리, 하안리, 가학리의 일부에서 수십 년 전부터 교회당을 세우고 기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 수가 점차 줄어 가학리에는 지금 신도 수가 전혀 없으며 하안리, 광명리의 일부에서만 신자가 있다. 신도 수는 1931년 조사에 의하면 57호였고 예배당은 광명리, 하안리에 각각 하나씩 있다.”라고 되어 있다.
하안교회는 일제 강점기에 문맹 퇴치 운동을 했다고 전한다. 6.25전쟁 때는 피해를 입지 않아 당시 부통령이던 함태영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1960년대에는 교인이 3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하였으나 1960년대 말 밤일마을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면서 마을에 인구가 유입되지 않아 교인의 수도 제한되었다.
하지만 밤일마을과 달리 인근의 각처에서는 인구가 늘어나고 하안교회를 다니던 교인들이 거주하는 곳에 교회가 6개나 설립되는 파급 효과를 나타냈다. 밤일마을의 토박이 주민이었던 광명시 전 시장 이효선의 어머니인 권사 김간란도 이 무렵 소하동에 독산동교회를 개척하였다. 현재 하안교회는 1995년 부임한 이석석 목사가 목회자로 있다. 『하안동지』에는 1950년에서 1983년까지 하안교회 행사록과 1966년 예산 및 결산서, 1940년대 후반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교적부가 기록물로 소개되어 있어 이 지역 교회사 연구에 참조가 된다.
[오늘날 광명 지역 교회의 모습]
광명 지역에서 광명교회와 하안교회 다음으로 생긴 교회가 서면교회[현 구름산교회]와 온신교회이다. 서면교회는 1956년 8월 서면초등학교에서 부흥회를 하였다. 1957년 천막 교회로 출발하여 소하동 가리대마을 옆 구름산 기슭에 18평[59.51㎡] 양철 지붕 목조 건물을 세웠으며 후에 50평[165.29㎡]의 철근 슬라브 블록 건물로 개축하였다. 1996년에는 본관 100평[330.58㎡], 사무실 및 부속실 30평[99.17㎡]이 되는 현 건물을 신축하였다. 2007년 60평[198.35㎡] 규모의 교육관 건물을 신축하고 2009년에는 성가대 연습실 및 북 카페를 건축하였다.
1970년대 이후 광명 지역이 도시화되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수많은 교회가 생겨났다. 오늘날 단독 건물을 가진 교회도 적지 않지만 많은 교회가 건물의 일부를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다. 교회는 신고나 등록제가 아니기 때문에 교회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다만 광명시에서 코로나19 관련 예방 지침을 전달하고자 2021년 초 각 지역 통장을 통해 물리적으로 파악한 숫자는 340여 개이며, 세무소를 통해 파악된 숫자는 200여 개라고 한다.
광명 지역의 교회 공간도 시대를 지나면서 많은 변화를 보여 왔다. 광명교회와 하안교회가 처음 초가집에서 출발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오늘날 큰 교회의 공간은 쓰임에 따라 다양화되었다. 과거 촌락의 교회를 보면 대개 사택과 예배당으로 구성된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오늘날은 교육관, 식당, 성가대 연습실, 북 카페 등 신도들의 복지 시설로까지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