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593 |
---|---|
한자 | 嶺南邑誌慶山河陽慈仁 |
영어공식명칭 | 『Yeongnam Eupji』「Gyeongsan·Hayang·Jain」 |
이칭/별칭 | 경산현지,하양현지,자인현지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재두 |
[정의]
1895년 편찬된 경상도 경산현·하양현·자인현의 읍지.
[개설]
『영남읍지』는 1895년(고종 32) 편찬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여기에는 경산현·하양현·자인현을 비롯한 경상도 66개 고을의 읍지가 포함되어 있다. 1832년(순조 32)에 편찬된 『경상도읍지』와 달리 재필사 과정 없이 각 고을에서 편찬한 읍지를 그대로 합철한 것이다.
[저자]
『영남읍지』 「경산·하양·자인」 은 군국기무처와 경상감영의 지시에 따라 경산현령 유달준(兪達濬), 하양현감 정성검(鄭晟儉), 자인현감 조유승(曺有承)이 각각 관할 고을의 읍지를 편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1894년(고종 31) 7월 1일 군국기무처는 각도의 감영·병영으로부터 주부군현진역보(州府郡縣鎭驛堡)에 이르기까지 인사와 재정에 관한 사례를 부기한 읍지를 수합하였는데, 이 사업은 1895년까지 진행되었다. 이에 경산현·하양현·자인현도 읍지를 편찬하여 경상감영에 제출하였고, 경상감영은 수합한 읍지를 동일한 표지와 표제 표기 방식으로 성책하였다.
[형태/서지]
1895년 편찬된 『영남읍지』는 총 34책의 필사본이며, 크기는 세로 28.6㎝, 가로 18.1㎝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에 행자수는 10행 20자,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경산은 「경상도경산현읍지」, 하양은 「하양현읍지」, 자인은 「자인현지」로 각각 엮여져 있다. 분량은 「경상도경산현읍지」 13장, 「하양현지」 14장, 「자인현지」 28장이다. 경상도의 다른 고을과 달리, ‘의정부(議政府)’라고 명기된 붉은색 인찰판(印札板)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경산현은 검은색, 하양현과 자인현은 붉은색 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다.
[구성/내용]
「경상도경산현읍지」는 1786년(정조 10)에 편찬한 구지(舊誌)를 베낀 것이지만, 호구·전부·군액·창고·축물·진공·봉름은 생략하였다. 전체 항목은 강역·건치연혁·군명·관직·성씨·산천·풍속·방리·성지·봉수·학교·단묘·불우·누정·도로·교량·제언·장시·역원·목장·형승·고적·토산·환적·과거·인물·제영·비판(碑板)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도는 없다. 말미의 ‘경상도경산현사례’에는 상납군(上納軍)·하납군·각식례(各式例)가 수록되어 있다. 과거·인물·제영·비판의 내용은 1832년에 편찬한 『경상도읍지』와 동일하다.
「하양현지」도 1786년에 편찬한 구지를 베낀 것인데, 그 중에서도 과제(科第)·인물·서적(書籍)·고적·누정제영(樓亭題詠)·사찰·형승·비문(碑文)은 생략하였다. 『경상도읍지』 유형의 수록 순서를 일부 변형한 것으로 지도·건치연혁·현명·관직·성씨·산천·풍속·방리·도로·교량·제언·전결(田結)·부역(賦役)·봉름·토산·진공·군병·봉수·창고·조적(糶糴)·교원(校院)·단묘·공해(公廨)·장시·역원·환적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말미에는 ‘하양현사례’가 수록되어 있다.
「자인현지」는 지도·건치연혁·군명·관직·성씨·산천·풍속·방리·호구·전부·전세·대동·균역청·균세·요역·군액·성지[무(無)]·임수[무]·창고·군기·관애[무]·진보산성[무]·봉수[무]·학교·단묘·불우·공해·누정·도로·교량[무]·도서[무]·제언·역원·장시·목장[무]·형승·고적·토산·진공·봉름·환적·인물·제영·비판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말미에는 ‘자인읍사례’를 수록해 놓았다. 환적조 마지막에 실린 인물이 1894년에 부임한 조유승이고, 1850년(철종 1) 진사가 된 인물이 확인된다. 이를 미루어 볼 때 경산현·하양현과 달리 1895년 읍지 편찬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영남읍지』 「경산·하양·자인」 은 경산현과 하양현은 1786년, 자인현은 1895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읍지이다. 특히 말미에 수록된 읍사례를 통하여 1895년 당시 세 고을의 재정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