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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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璟植 |
영어공식명칭 | Jo Gyeongsi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 786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신은제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조경식(趙璟植)[1887~1950]은 1887년 12월 14일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평양 의학 전문 학원에 합격[『매일신보』, 1905년 8월 11일자]하였으며, 1906년에는 함안군사립 단명 학교(私立闡明學校) 보조 인원[『황성신문』 1906년 9월 27일자]으로 참여하였다. 학교 설립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계몽 운동가로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튿날인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도 이끌었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주민 5,000여 명이 시위 운동에 참여하여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시위대가 경찰 주재소에 투석하자 공포만 발포하던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단행하였다. 이에 현장에서 시위대 21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당하였으며, 시위 주도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를 단행해 16명이 수감되었다. 조경식도 이때 체포되어 8월 21일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개월 형을 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서산정(西山亭)에서 만세계(萬世契)를 조직하고 반일 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