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533 |
---|---|
한자 | 裡里農樂 |
영어공식명칭 | Traditional Korean Music Performed by Farmers in Iri|Iri Nongak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미미 |
[정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전승되는 호남우도농악의 일종.
[개설]
농악[풍물놀이]은 음악, 무용, 연극, 놀이 등의 다양한 요소가 종합된 예술로서 우리나라 전통예술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집단 예술이다. 우리나라에서 농악이 가장 발달한 지역은 벼농사가 활발한 호남 지역이다. 호남의 농악은 지역에 따라 크게 호남우도농악과 호남좌도농악로 나뉜다. 호남우도농악은 서울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인 호남 서해안 평야지대에 분포되어 있다. 호남좌도농악은 왼쪽인 호남 내륙·산간 지역에 전해지고 있다.
이 중 호남우도농악이 행해진 전라도 서부 지역은 넓은 평야와 하천이 많이 있어 호남좌도농악 지역의 농가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여 규모가 큰 판굿이나 연희적인 풍물놀이가 성행하였고, 교통이 발달하여 타지의 전문 연희인이 활발하게 합류하면서 자연스럽게 농악이 전문화되어 갔다. 이러한 호남우도농악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이리농악이다. 전라북도 이리시[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전승되던 이리농악은 예부터 왕성하였던 마을공동체의 풍물놀이를 기반으로 전문적인 기예인들을 받아들여 높은 수준의 풍물 기량을 전승하여 왔다. 1985년 12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어 있다.
한편, 익산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또 하나의 풍물놀이인 익산성당포구농악은 성당면 성당리 지역에 토박이 풍물놀이로서 전승되고 있는데, 이리농악과 달리 호남좌도농악의 특성을 띠고 있다.
[연원]
일반적으로 농악은 고대부터 농경 생활과 함께 발전하여 오다가 조선 후기에 급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리농악도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경로로 발전하여 온 마을공동체 농악을 기반으로 하여, 전라북도의 김제, 정읍, 부안 등에서 활동하던 전문 기예인들의 기예를 받아들이면서 형성되었다.
이리농악은 옛부터 마을농악이 왕성했던 새실마을 농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에는 마을농악으로 이어져 오다가 1950년대부터 김제, 정읍 등에서 전문적으로 굿을 배운 사람들을 받아들이면서 전문적인 농악단으로 발전하였다. 1950년대에 상쇠 강기팔, 설장고 이동원, 수징 백원기 등이 주도하여 농악단을 전문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현재의 이리농악이 정립되는 과정에서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였던 김형순[1933~2017]의 역할이 컸다. 김형순은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동네 풍물놀이판에 어울렸다. 열네 살 때부터 장구 명인인 이동원에게서 장구를 배우는 등 좋은 환경 속에서 풍물을 익힌 김형순은 스무 살이 되던 1952년에는 당시의 이리시 평화동[현 익산시 평화동]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겼다. 1953년 3월에는 이리농악계를 조직하였고 1959년 3월에 이리농악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당시는 ‘정읍농악’이 쇠퇴할 무렵이었는데, 김형순은 정읍·김제·부안에서 활동하던 전문적인 호남우도 풍물놀이꾼들을 받아들여 이리농악의 활성화와 전문화를 이끌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풍물놀이는 꽹과리·징·장구·북·소고 등의 타악기와 쇄납[태평소] 같은 관악기들을 연주하며 행진하거나 춤을 추고 각종 기예와 동작, 연극을 펼치는 종합예술이다. 풍물패 구성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악기잽이와 기수, 잡색이 있다. 이리농악의 경우는 2000년 9월 3일의 판굿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악기잽이에는 꽹과리 4인, 징 2인, 장구 5~6인, 북 2인, 소고 상당수, 쇠로 된 긴 나발 1인, 쇄납 1인을 기본으로 하는데, 상황에 따라 약간의 변화를 주기도 한다. 기수는 농기수 1인, 용기수 1~2인, 영기수 2인이 있으며 잡색으로는 대포수, 조리중, 창부, 양반, 각시가 각 1인씩이고 무동 2인을 두기도 한다.
[놀이 방법]
이리농악의 판제 구성은 내드름굿-첫째마당-둘째마당-셋째마당-넷째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드름굿은 청령소리굿-일채-이채-삼채굿-이채-인사굿의 순서로 진행된다. 첫째마당은 오채질굿-좌질굿-우질굿-질굿-양산도-삼채이음굿-삼채-삼채변형-삼채-빠른삼채-긴매도지의 순서로 진행된다. 둘째마당은 오방진-오방진변형-진오방진-삼채이음굿-삼채-삼채변형-삼채-빠른삼채-이리매도지의 순서로 진행된다. 셋째마당은 일채-어름굿-호호굿-자진호호굿-을자진-방울진-가위치기-빠른삼채-짧은매도지의 순서로 진행된다. 넷째마당은 개인놀이[고깔소고놀이-채상소고놀이-쇠놀이-장구놀이-열두발상모놀이-기놀이]-이채-인사굿의 순서로 진행된다.
치배별로 보면 이리농악은 상쇠의 부포놀이가 매우 다양하다. 호남좌도농악이 부포의 깃털이 부드러운 부들상모를 쓰는 데에 반하여 호남우도농악인 이리농악은 뻣뻣한 뻣상모를 쓰고 부포놀이를 한다. 소고춤의 기법이나 진풀이도 다양하며 장구, 특히 설장구의 가락과 춤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음악적 특징으로는 비교적 느린 가락을 많이 써서 가락이 구성지고 유장하며, 기교가 뛰어나게 발달하여 변주가 매우 치밀하게 이루어지며 “내고 달아 맺고 푼다.”라는 풍물 연주의 원리를 충실히 따른다. 특히 오채질굿은 이리농악을 대표하는 독특한 가락으로, 이분박과 삼분박이 혼합되어 있고 장단 구조가 매우 복잡하여 치배들의 숙련성을 요한다.
[현황]
이리농악단은 창단 이후 활발하게 활동을 벌여 오면서 1983년 제1회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1983년 제3회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는 대통령상을 받았다. 1985년 제2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도 대통령상을 받았다. 1985년 12월 1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되면서 장구 김형순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2019년 현재 이리농악은 이리농악보존회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명맥을 이어 가고 있으며 익산시가 마련한 국가무형문화재 통합전수교육관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학생이나 일반인에게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