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345
한자 白華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용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개설
성격 법정리
면적 8.11㎢
가구수 183가구
인구[남/여] 375명[남자 175명, 여자 200명]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백화리에는 이화낙지(梨花落地)[배꽃이 땅에 떨어짐] 형국의 명당이 있다 하는데, 배꽃이 희므로 ‘화(花)’와 통하는 ‘화(華)’를 이용해 백화리(白華里)라 하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용담군 이북면에 속했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중화리(中華里)·이현리(梨峴里)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교통 일부를 병합하여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지장산에서 뻗어 내린 산등성이가 사방을 에워싼 가운데 서쪽으로만 트인 형국이다. 지장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쌍교봉을 경계로 하여 무주군 부남면과 접경하고, 밤고개 너머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와 연결된다. 남동쪽 형제봉에서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내린 달롱개재·오얏 고개를 경계로 하여 안천면 노성리와 접경하고, 지장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안천면 삼락리와 접경한다.

북쪽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은 도라실·지소 마을을 적시고 서쪽으로 흘러 용담댐으로 들어간다. 북서쪽 쌍교봉 골짜기와 남동쪽 형제봉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도 서쪽으로 흘러 용담댐으로 들어간다. 쌍교봉 기슭에 상리 마을·중리 마을이 있고, 형제봉 기슭에는 율현 마을·구례 마을이 있다. 하리 중리 마을 주변에는 제법 널따란 들판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백화리안천면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2013년 11월 30일 현재 면적은 8.11㎢이고, 인구는 183가구 375명[남자 175명, 여자 200명]이 살고 있다. 율현·구례·상리·중리·하리·도라·교동 7개 행정리로 이루어졌다.

주민들의 주요 경제 활동은 논농사와 밭농사이다. 주요 작물로는 벼·인삼·고추·복분자·수박 등이 있다. 진안~무주 간 국도 30호선이 동서로 관통하고 있으며 달롱개재 옆 백화리 분기점에서 국도 13호선이 갈라져 삼락리를 거쳐 용담면으로 연결된다. 중리 마을에서 면도가 도라실을 거쳐 서쪽 지소로 돌아 나와 삼락리에서 국도 13호선과 연결된다.

유물과 유적으로는 화산 서원(華山書院)·황방촌 영정(黃尨寸影幀)·이화당(梨華堂)·화천사(華川祠)·학륜당(學倫堂) 등이 있다. 교육 기관으로 통합 학교인 안천 초중고등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용담댐 건설로 수몰된 안천 초등학교·안천 중학교·안천 고등학교가 물에 잠기면서 통합한 것이다.

율현 마을 입구에 상수리나무와 개서어나무로 마을 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수구막이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 2기의 돌탑이 있다. 1기는 마을 입구의 도로변에 위치하며 또 1기는 남쪽으로 하천을 건너 1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돌탑은 절반 정도 무너져 있는 상태이며, 남쪽의 돌탑은 거의 무너져 기초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탑제를 지내고 있다.

상배실 마을은 풍수적으로 ‘와우혈’에 해당하는데 마을 어귀 왼쪽 기슭의 소나무 몇 그루가 소의 머리에 해당되고 마을 중심에 바가지 샘이라 불리는 곳이 ‘소젖’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 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미을 입구에 돌탑 1기가 서 있으며 이곳을 탑거리라 부른다. 본래는 2기였는데 새마을 사업 때 없앴다가 마을에 재앙이 끊이지 않자 1975년 다시 세운 것이다. 이후 마을의 재난이 사라졌다 한다. 돌탑은 3m 정도의 높이에 그 위에 선돌을 올린 형태이다.

중리 마을 어귀에는 방촌 황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으며, 그 자손인 황보신·황징 등을 배향하고 있는 장수 황씨 사당이자 화산 서원이 있다. 서원 앞 도로변에는 ‘열부 통정대부 황대성의 처 옥천 육씨지여’라고 쓰여 있는 옥천 육씨 정려가 있으며 화산 서원 건너편 길가에는 ‘효자 학생 증9품 후임부 중학교 교관 장수 황민찬지여’라고 쓰여 있는 황민찬 정려가 있다.

중배실 마을에는 서당이 있었다. 안천면 지역 5개 마을에는 각각 서당이 있었으나, 1923년 각 마을 서당을 중배실 ‘이화재’로 통합했고, 1925년 안천 공립 보통학교가 설립되면서 학생들이 전학하였다. 이화재는 이후 개인 주택으로 사용되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서당이라 불렀으나, 현재는 빈집으로 폐가가 되었다.

하리 마을 우측에는 낙안 김씨의 사당이 있고, 도라실 마을 북편 옹골 입구에는 도요지가 있다. 이곳은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밭 경계 부위에 요지가 있다. 주변에는 다량의 요벽과 백자편들이 산포되어 있다. 백자는 사발과 대접류가 주류를 이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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