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481
한자 先史
이칭/별칭 선사 시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선사/선사
집필자 최범호

[정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 시대의 역사.

[개설]

선사 시대는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를 말하며 세부적으로 구석기·중석기·신석기·청동기 시대를 포함한다. 진안 지역에서 전라북도 최초로 구석기 시대 유적[모정리 진그늘 유적]이 발견되었으므로 이른 시기부터 진안을 비롯한 전라북도 내륙 지역에서 사람들이 살았다고 추정된다. 진안 지역에서는 용담댐 건설과 관련하여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모정리 진그늘 유적만이 아니라 신석기 시대의 유적인 갈용리 갈두 유적·모정리 여의곡 유적 등도 확인되었다. 또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슴베찌르개·몸돌·빗살무늬 토기·간돌검 등 많은 유물이 진안 지역의 여러 곳에서 발굴되었다.

[진안 지역의 석기 시대]

진안 지역의 구석기 시대는 용담댐 건설로 인한 수몰 지역인 금강 본류·정자천·진안천 유역에서 격지·몸돌·긁개 등의 유물이 다량으로 수습되었으므로 그 상한이 구석기 시대 후기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인 모정리 진그늘 유적에서는 20여 곳의 석기 제작소와 화덕 자리 및 몸돌·격지·돌날·좀돌날·조각돌 등 구석기 유물이 다량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확인된 유물 중에서 슴베찌르개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므로 이곳은 특정 시기에 찾아와서 사냥용 도구를 만들고 잡은 짐승을 처리하던 사냥 캠프로 추정된다.

진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는 1만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격적인 농경 단계로 진입하기에 앞서 채집 경제에서 생산 경제로 바뀌면서 정착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생활 유적과 토기 및 간돌검 등이 확인된다. 이 시기의 유적으로는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승금 유적안자동 유적·상전면 용평리 운암 유적·정천면 갈용리 갈두 유적갈용리 농산 유적·정천면 모정리 진그늘 유적모정리 여의곡 유적·성수면 좌포리 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유적들은 하천 유역의 들판과 구릉지에 입지하였는데 이는 농경을 비롯하여 생계에 유리한 자연 환경과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신석기 시대 유물의 절대 다수는 빗살무늬 토기편인데 주로 화덕 자리나 집석 유구에서 출토되었다. 진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유적은 대부분 금강섬진강 유역에 펼쳐진 들판에 입지하였으므로 차후 유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진안 지역의 청동기 시대]

진안 지역의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은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금강 상류의 정자천·안자천·주자천을 따라 골고루 분포하며, 특히 정천면 모정리안천면 삼락리 일대에 밀집되어 있다. 섬진강 유역에서는 본래 하천 교통의 중심지인 마령면 일대에 30여 기의 고인돌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대부분의 고인돌은 농경지 개간과 경지 정리 사업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진안군 백운면 일대 10여 곳에는 약 40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하천 유역의 들판이나 내륙 교통로가 통과하는 곳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고인돌에 대한 발굴 조사는 용담댐 수몰 지구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진안군 안천면·정천면 일대에서 200여 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고, 특히 정천면 모정리 여의곡 유적모정리 모곡 유적에서는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함께 확인되어 큰 관심을 끌었다. 이 고인돌들은 외곽에 타원형·장방형·방형의 묘역을 구획하고 그 중앙에는 지하식 혹은 지상식의 매장 주체부를 갖추었는데 이와 유사한 형태의 고인돌이 황강 유역의 거창군과 합천군에서 조사된 바 있다.

이밖에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수좌동 유적·정천면 갈용리 농산 유적·정천면 모정리 여의곡 유적 등에서 청동기 시대의 생활 유적이 조사되었다. 갈용리 농산 유적에서는 원형 혹은 장방형 평면의 집자리와 구덩이 유구가 발굴되었고 모정리 여의곡 유적에서는 송국리형 집자리와 밭 유적이 조사되었다. 한편 백운면 동촌리 유적에서는 송국리형 토기가 수습된 장방형 집자리가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진안 지역의 집자리 유적은 고인돌처럼 황강 혹은 남강 유역에서 조사된 집자리들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 많은 관심을 끌었다. 특히 정천면 모정리 여의곡 유적에서 조사된 밭은 당시의 생산 경제 체제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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