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4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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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器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최범호 |
[정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개설]
고조선과 중국 연의 무력 충돌로 고조선 유이민들이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기존의 고인돌 사회는 급격히 해체되었고, 새로운 질서의 재편 속에서 마한 등 삼한 정치체가 형성되었다. 이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철기가 새롭게 출현했고, 청동기 제작 기술도 크게 발전하면서 우수한 청동 제품이 급증하게 되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한조에 따르면 마한에는 모두 54개의 소국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한의 영역이 오늘날 경기도 서해안 지역을 비롯하여 충청남도·전라북도·전라남도 등에 걸쳐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 소국들은 대체로 현재의 군 단위마다 하나씩 자리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이전에 열거된 소국 중 진안 지역에도 소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영토인 난진아현(難珍阿縣)으로 완산주(完山州) 99현 가운데 하나였으며, 월랑(月浪)[越浪]이라고 불렸다. 진안 지역에는 와정 토성·운교리 고분 떼·신괴리 고분 떼·월계리 고분 떼·운봉리 산성·모정리 여의곡 유적·월계리 와요지·대불리 야철지 등에 철기 시대 문화 유적들이 산재한다.
[와정 토성]
진안 용담댐에서 상류 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행정 구역상으로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속한다. 이곳은 금강과 섬진강을 직접 연결하는 남북 방향 교통로와 호남 정맥과 소백산맥을 넘는 여러 갈래의 동서 방향 교통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유적은 금강 유역의 반달 모양으로 생긴 산에 입지를 두었는데, 산의 외곽에는 판축법(版築法)으로 토성을 쌓았고, 내부에는 주거지와 저장용 구덩이 유적이 있다. 흙을 일정한 깊이로 파낸 다음 그 안에 생활 공간을 마련했는데, 북벽 혹은 북서벽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만든 온돌 시설이 벽면을 따라 둘러 있다.
유물은 세발 토기·항아리·시루 등 백제 토기가 주종을 이루고 여기에 뚜껑 접시와 같은 가야 토기도 일부 섞여 있다. 이 유적을 통하여 철기 시대 진안 지역의 중심세력이 이곳에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운교리 고분 떼]
진안군 백운면 운곡리 일원에 적지 않은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데, 이곳은 섬진강 수계의 상류 지역이며 금남 호남 정맥에 우뚝 솟은 고봉의 서쪽 기슭 말단부로 섬진강의 본류를 따라 충적지와 구릉 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백운면 북쪽의 상원산 마을 동쪽 산줄기의 남쪽 기슭에 구덩식 돌널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폭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 지역은 대부분 계단식 농경지나 대규모 민묘 구역으로 개발되어 적지 않은 고분이 유실 내지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유적을 통해 이 지역에 일련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괴리 고분 떼]
진안군 안천면 신괴리 지사리 마을의 북쪽에 있다. 안천면과 상전면의 경계인 고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동쪽 기슭 하단부에 지사리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북서쪽에 완만한 지형을 이루고 있는 산줄기의 정상부와 남쪽 기슭에 고분 떼가 있다. 이 일대는 용담면 월계리 성남 마을에서 금강의 본류를 건너 육십령과 월성치로 직접 연결되는 동서 방향 교통로가 통과하는 길목이다. 지사리 마을에서 남쪽으로 2㎞ 정도 떨어진 곳에도 동서 방향 교통로가 통과하는 고개가 있어서 교통의 요충지에 일정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월계리 고분 떼]
1997년 진안 용담댐 수몰 지구 발굴 조사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진 곳으로,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 황산 마을 동쪽에 자리하여 ‘황산리 고분 떼’라고 부르기도 한다. 금강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뻗은 산줄기의 정상부와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가 지구에서 12기와 나 지구에서 5기 등 모두 17기의 구덩식 돌널무덤이 조사되었다.
유물은 토기류·철기류·방추차 등 97점이 출토되었는데, 토기류는 다양한 양식의 가야 토기와 백제 토기가 섞인 상태로 출토되었다. 가야 토기와 백제 토기가 동일 무덤에서 섞인 상태로 출토되어, 가야 세력과 백제와의 교역 및 교류 관계를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운봉리 산성]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구암 마을 북쪽에 있는 유적으로 마을 북쪽 산봉우리의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과 여기에서 서쪽으로 2㎞ 가량 떨어진 산봉우리에 운봉리 봉수가 있다. 산성과 봉수의 중간에 탁고개가 있으며, 금남 정맥의 싸리재와 주자천을 따라 선상으로 연결된 여러 갈래의 교통로가 여기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이러한 교통의 요충지에 고분 떼가 위치한 것으로 보아 이곳을 중심으로 일정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모정리 여의곡 유적]
진안 용담댐 수몰 지구 내 문화 유적에 대한 구제 발굴 당시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여의곡 C 지구에서 1기의 굴식 돌방무덤이 조사되었다. 고분의 위치·벽석의 축조 방법·연도의 위치·장축 방향 등 유구의 속성은 백제 고분의 속성을 강하게 담고 있어서 백제 시대의 고분임을 알 수 있다.
[월계리 와요지]
진안 용담댐 수몰 지구 내 문화 유적에 대한 구제 발굴을 통해 알려진 곳으로 행정 구역상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속한다. 월계리 원월계 마을에서 서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동쪽 기슭에서 지하식 등요 2기와 반지하식 등요 1기 등이 조사되었다. 이곳에서는 막새류가 한 점도 출토되지 않아 무단식 암·수 기와만을 생산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기와의 문양과 제작 기법·와요 형태·출토 유물의 속성 등이 백제 기와 가마터와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므로 백제 시대의 가마터임을 알 수 있다.
[대불리 야철지]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학선동 마을 동쪽에 있는 대불리 야철지 유적은 금남 정맥의 산줄기에 솟은 운장산에서 동쪽으로 3.5㎞ 정도 떨어진 복두봉 북서쪽 기슭 하단부의 학선동 마을과 학산재 사이의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철기 시대에 이곳을 중심으로 철기 제작이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