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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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安郡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순철 |
간행 시기/일시 | 1925년 - 『진안지』[1924]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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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향토지 |
간행자 | 진안 향교 |
표제 | 『진안지(鎭安誌)』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의 역사와 실상을 기록하여 진안 향교에서 발간한 향토지.
[개설]
진안군은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난진아현으로 월랑이라고도 불렸으며, 통일 신라 시대에는 757년 진안으로 개칭하여 장계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전주의 속현으로 감무를 두었으며 1391년 공양왕 3년에는 마령현까지 겸무토록 하여 월랑현이라고 부르고 현령을 두었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1413년(태종 13)에 마령현을 통폐합하여 진안현으로 개칭하고 현감을 두었다. 그 후 1895년(고종 32)에 전라북도 관찰사 아래 26군을 두면서 진안군으로 다시 개칭하여 군수를 두었다. 1896년 8월 4일에 부령 제98호[1896. 8. 4.]로 남원부 진안군이 되었다가 1914년 3월 1일에 부령 제11호[1913. 12. 29.]로 용담군과 합병하여, 오늘의 진안군이 되었으며, 11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1924년 경 당시 진안 군수로 부임되어 왔던 이완직(李完稙)은 백제와 신라 이래로 1100년이 지난 고을인 진안군의 기록물이 부족한 상황을 안타갑게 여겨 『진안 군지』[1924] 편찬을 추진하였다. 마침내 전 군수(前郡守) 주사(主事) 오정열(吳正烈)이 군내의 여러 선비들과 함께 군지(郡誌)의 일을 발의하고 심력을 다하여 속수(續修)하고 신증(新增)하여 1년 만에 군지를 완성하였다.
[서지/형태]
목활자본 가로 21㎝, 세로 31.5㎝, 4책 8권이다.
[구성/내용]
총 4책 8권으로 이루어졌다. 1책에는 서문과 범례, 목록, 『진안지』 구본(舊本)과 1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1권에는 연혁(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경계(疆界), 방리(坊里), 성씨(姓氏), 풍속(風俗), 산천(山川),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관우(館宇), 학교(學校), 서원(書院), 공서(公署), 사회(社會), 사단(社壇), 불우(佛宇)가 실려 있다.
주목되는 것은 『진안지』 구본이다. 구본은 먼저 진안현 편이 실려 있고 다음은 용담현 편이 실려 있다.
『진안지』 구본 진안현 편에는 연혁, 성씨, 풍속, 산천, 토산, 누정, 관우, 제영(題詠), 역원(驛院), 불우, 제언(堤堰), 인물이 실려 있고, 관안(官案), 이안(吏案), 공안(貢案), 호액(戶額), 전안(田案), 재곡군 자창미(財穀軍資倉米), 진휼미(賑恤米), 상평미(常平米), 위봉 산성 군향미(威鳳山城軍餉米), 순영미(巡營米), 검영미(檢營米), 병안(兵案), 천안(賤案), 군기(軍器) 등이 실려 있다. 다음에는 선생안(先生案)인데 연대 미상의 수령으로부터 1914년까지 재직한 159인이 실려 있다.
『진안지』 구본 용담현 편에는 연혁, 관원, 경계, 산천, 풍속, 형승, 고적, 관우, 사단, 사찰, 제언, 토산, 성씨, 인물, 우거(寓居), 묘지 등이 기재되어 있다. 용담지 구본에도 선생안이 실려 있는데 고려 때의 윤소종(尹紹宗)으로부터 진안군으로 통합된 1914년까지의 수령 159인이 실려 있다.
『진안지』 2책 2-4권에는 관안(官案), 군세(郡勢), 면세(面勢), 역원(驛院), 도로(道路), 교량(橋梁), 나루터(津舡), 시장(市場), 교통(交通), 제언(堤堰), 명환(名宦) 9인, 명현(名賢) 1인, 유일(遺逸) 3인, 학행(學行) 58인, 문장(文章) 11인, 문예(文藝) 73인, 문망(聞望) 35인, 필원(筆苑) 5인, 자선(慈善) 6인, 충신(忠臣) 11인, 절의(節義) 2인, 효자(孝子) 398인, 효부(孝婦) 19인, 열녀(烈女) 275인이 실려 있다.
3책 5-7권에는 생원, 진사 102인, 문과 19인, 무과 19인, 음사(蔭仕) 94인, 수직(壽職) 42인, 증직(贈職) 7인, 누대(樓臺), 석실제명(石室題名), 묘지(墓地), 묘각(墓閣), 삼림(森林), 종대(宗垈)와 묘갈명 34편, 신도비문(神道碑文) 1편이 실려 있다.
끝으로 『진안지』 4책 8권에는 기문 96편과 제영 68수가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완편(完篇)이 없던 『진안지』를 체계를 갖추어 속수(續修)하고 신증(新增)하여 완편을 만듦으로써 향토사 연구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는 커다란 의의가 있다. 그러나 체계가 아직 미흡하고 내용이 다소 소략하여 젊은 층과 후속 세대 양성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