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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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自讓 |
이칭/별칭 | 죽헌(竹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병남 |
추모 시기/일시 | 1923년 - 전자양 쌍충신 전공 자온 자양 신단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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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진안 이산묘 영모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촌리 78] |
비석 | 쌍충신 전공자온자양 신단비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강정 마을 영계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천안(天安) |
대표 관직 | 사직 |
[정의]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개설]
진안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世居)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가계]
본관은 천안(天安). 호는 죽헌(竹軒). 문평공(文平公) 전문식(全文軾)의 현손으로 호조 판서 전극례(全克禮)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전자양(全自讓)[?~?]은 타고난 바탕이 빼어나고 뜻과 기개가 높았다. 세종 때에 형인 사간(司諫) 전자온(全自溫)과 같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사직(司直)에 이르렀다. 청현(淸顯)을 드러냄에 거리낌이 없어서 바른 말을 잘하여 세조의 미움을 받았다. 상왕인 단종이 죽임을 당하자 형 자온과 함께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서 순절하니, 부인 평산 신씨(平山申氏)도 그 뒤를 따랐다. 그 후 유림이 이 일을 기리기 위해 진안 성수면 도통리에 쌍충단(雙忠壇)을 짓고 봉향하고 영산서원에 배향하였으며 이산묘에 추향하니 두 형제의 순절을 ‘쌍충’이라 하였다. 이런 사적이 『동학지(東鶴誌)』와 『호남지(湖南誌)』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23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강정 마을 영계사 왼쪽에 ‘쌍충신 전공자온자양 신단비(雙忠臣全公自溫自讓神壇碑)’이라 새진 비석이 건립되었다.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