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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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錫泰 |
이칭/별칭 | 묵재(黙齋)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명광 |
출생 시기/일시 | 1799년 - 성석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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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62년 - 성석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86년 - 성석태 정려 |
출생지 | 성석태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 |
정려비 | 성석태 정려비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창녕(昌寧) |
[정의]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독곡(獨谷) 성석린(成石潾)의 후손으로 통덕랑(通德郞) 성창하(成昌夏)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성석태(成錫泰)[1799~1862]는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학업에도 열중하여 연익서를 저술하였다. 『진안지』에 의하면,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시묘 살이를 하였으며, 그가 성묘하면서 땅에 엎드렸던 자리는 지금도 풀이 나지 않고 그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아들 성필원(成弼源)과 함께 1886년(고종 23)에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비는 1958년 10월에 5대손 성명호(成明鎬)가 건립하였으며,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외금 마을 서쪽 말고개 도로변에 있다. 앞면에 ‘창녕 성씨 양세 효자비(昌寧成氏兩世孝子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높이 150㎝, 폭 46㎝, 두께 18㎝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