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347
한자 儒敎
이칭/별칭 유학(儒學),유가(儒家),유도(儒道)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집필자 이선아

[정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공자 이래 발달한 유학과 관련된 전반적인 활동.

[개설]

유교(儒敎)는 공자[B.C. 551~B.C. 479]가 창시한 사상, 혹은 학문 체계를 뜻하며 유학(儒學), 유가(儒家), 유도(儒道)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절대자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절대자의 위치에 조상신을 자리하게 하면서 조상에 대한 효(孝)를 강조하였다. 효는 유교의 기본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인(仁)을 키우는 방법론으로 강조되었던 것이며, 이러한 행위의 표현 방식은 곧 예(禮)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성인군자(聖人君子)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군자의 통치를 통해 구현되는 정치를 ‘왕도 정치’라 하였고 개인의 인격 수양이 가족, 나라, 천하에 이르는 국가 통치 원리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한나라 때 유교는 국교화 되어, 유가서로 교육하고 관리를 선발함으로써 유가의 원리가 널리 확산시켰다.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유가 교육 기관은 국가의 정책 실현의 장으로서 진안에서의 유교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도래와 변천]

진안군은 백제 당시 물거현[용담현], 난진아현[월랑], 마돌현[마령]이었던 것이 1413년(태종 13) 용담현진안현이 되었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현재의 진안군 1읍 10면으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진안군이라는 1개 군에 2개의 향교, 즉 용담 향교[동향면]와 진안 향교[진안읍]가 세워져 있는 형상이 되었다.

유교가 중국에서 들어 온 이후 지방에 향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였는데, 진안 지역에 유교 교육의 거점인 용담 향교가 들어선 것은 공양왕 대라고 전하고 있다. 조선 건국 이후 태조는 중앙에 국학을, 지방에는 향교를 세워 학문을 가르치고 이들로 하여금 문무 관료를 선발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에 따라 진안 향교가 들어섰다.

조선 후기 서원이 발달하면서 진안 지역에도 나름 특색을 가진 유교적 학맥이 형성되었다. 긍구당 김중정(金重鼎)[1602~1661]은 병자호란 이후 진안 지역에 은거하면서 와룡암을 세워 후진 교육을 시작하였고, 주천 서원에 배향되었다. 이후 진안 지역에는 1667년 용담 현령 홍석(洪錫)이 세운 삼천 서원, 황희(黃喜)를 향사하고 있는 화산 서원 등이 세워졌다.

조선 후기 진안 지역에서 활동한 유가로는 수당 이덕응, 수당 정종엽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연재 송병선, 간재 전우 등과 교유하였는데, 진안 지역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지와의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연재학파와 간재학파가 혼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안의 유교 교육 기관]

진안 지역의 유교 교육 기관으로는 용담 향교, 진안 향교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으며, 조선 후기에 세워진 주천 서원, 삼천 서원, 화산 서원와룡암, 관선당, 지선당, 거사재, 덕산재, 덕양재, 명덕재 등 선현들의 학문과 덕을 추숭하는 시설, 그리고 이산묘, 충렬사, 충효사, 내산사 등 유교의 충절을 기리는 사우 공간이 다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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