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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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安聖堂魚隱公所 |
이칭/별칭 | 어은동 공소,어은동 성당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어은동길 23[죽산리 45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영춘 |
공소 설립 시기/일시 | 1888년 - 어은동 공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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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설립 시기/일시 | 1900년 9월 22일 - 어은동 공소 어은동 본당으로 승격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9년 3월 - 어은동 본당 새 성전 준공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9년 - 어은동 본당 영신 학교 개교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1년 - 어은동 본당 어은동 공소로 격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2년 - 어은동 공소 진안 본당에 편입됨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5월 31일 - 진안성당 어은공소 국가등록문화재 제28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안성당 어은공소 국가등록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진안 성당 어은동 공소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어은동길 23[죽산리 453] |
성격 | 공소 |
전화 | 063-433-7368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등록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죽산리 어은동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진안 성당 소속 공소.
[개설]
전라북도 진안군과 장수군을 잇는 해발 1,059m의 성수산 북쪽 자락 끝에 있는 어은동 마을은 1888년에 공소가 설립된 유서 깊은 천주교 신자촌이다. 진안 지역에 천주교 신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신유박해[1801년] 이전부터이다. 진안 지역의 신자들은 대개 고산 지방에서 이사한 사람들이 많았다. 전주 본당[현 전동 성당] 관할이었던 어은동 공소는 1900년 9월 22일 전주 본당에서 분가해 전주 동남쪽인 진안, 장수, 무주, 남원 일대까지 관장하는 본당으로 설정되었다.
[변천]
전라도에서 두 번째로 사제가 된 김양홍(金洋洪)[스테파노, 1874~1945] 신부가 어은동 본당의 초대 주임 신부였다. 당시 인계받은 본당 관할 공소는 11곳이었으나 신자들의 편의를 위해 18개 공소로 나누었다. 신자 수는 모두 999명이었고, 어은동에만 189명이 있었다. 1888년 9월 옛 공소를 수리하고 확장해 목조 7칸 성당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교세가 점점 불어나자 1904년 마을 아래쪽에 새 성당 15칸 크기의 한옥을 신축하였다.
1905년에는 뮈텔(Mutel)[閔德孝, 아우구스티노, 1854~1933] 주교 지시로 여자 교우들이 앉는 여자 교우청에 통로를 따로 만들었다. 1906년 다시 성당을 넓히고자 성당 입구 쪽 남녀 교우청에 각각 한 칸씩을 신축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09년 3월 마침내 돌 너와 지붕 목조 162㎡[49평]의 새 성전을 준공하였다. 지붕을 돌 너와로 지을 때 신자들이 인근 산에서 등짐으로 직접 돌을 운반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2002년 5월 3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성당이 완공되던 1909년에 김양홍 신부는 성당 사랑채에 영신 학교를 세워 국어·한문·수신·산수 등을 가르쳤으며, 1911년에는 성당 앞마당에 학교를 신축하기도 하였다. 학교가 신축되던 1911년 어은동 본당 관할 신자 수는 2,117명이었고, 어은동 공소 신자만 520명이나 되는 등 어은동은 진안·장수 지역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21년 어은동 본당은 본당 자리를 진안군 마령면 연장리 한들 공소로 넘겨주고 다시 공소로 편입되었다.
이후 어은동 공소는 1947년 11월 송남호 신부를 맞이하면서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나 6·25 전쟁이 나면서 1951년 다시 폐쇄되어 한들 본당의 공소가 되었다. 그러다가 본당이 1952년 진안읍으로 옮겨 가면서 어은동 공소도 진안 본당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말과 어은동 공소 중간쯤 모시골[당고개 재] 산 능선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천호 성지로 유해가 이장된 이명서 성인의 묘터가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진안성당 어은공소에서는 매월 1회 첫 목요일 오전 7시에 미사를 드리고 있으며, 주일에는 진안 성당으로 가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신심 활동으로는 레지오 마리애를 하고 있고, 가톨릭 농민회 활동으로 풍년 기원 미사나 영농 발대식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현황]
2014년 현재 신자 수는 21세대 약 51명[남자 24명, 여자 27명]이고, 어린이들은 없다.
[의의와 평가]
진안 지역의 첫 천주교 본당인 어은동 성당은 1909년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돌 너와 성당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축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성당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4칸인 전통 한옥 성당으로 지어졌지만 유럽의 양식인 바실리카식 성당 평면 요소를 현지의 재료와 건축 방식으로 구현했기 때문에 서양 성당의 양식을 한국적 방식으로 토착화하였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 정면과 측면의 축을 바꾸어 긴 장방형의 종축 끝에 제단을 둔 방식은 실제적인 전례 공간을 위한 독창성을 보여 주고 있으며, 중앙 기둥 사이의 칸막이로 남녀석을 구분했던 모습은 한국 전통[남녀 구분]을 위한 독특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성당의 평면은 한옥이지만 전통 한옥의 구조가 아닌 필요에 따라 재구성한 독창성[제의방, 고해실, 제단 등]을 지니고 있다. 마찬가지로 삼랑식 실내 평면 구조 또한 전통 한옥의 평면 구조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닌 독특함을 갖추고 있다. 또한 지붕을 얹은 돌 너와는 전라북도 장수군 천천면의 신광사와 진안군 백운면 육모정과 함께 지역적 특성도 잘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이 한옥과 양옥의 절충적 형태로 전통성과 독창성을 모두 갖춘 어은동 성당은 건축학적으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을 뿐더러 초기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에도 중요한 건물이다. 또한 이명서 성인의 묘가 있었던 모시골이 인근에 있어 천주교 문화 유적지와의 연계에도 좋은 위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