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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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百衆 |
이칭/별칭 | 백종(百種),백종절(百種節),중원(中元),망혼일(亡魂日)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상훈 |
[정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음력 7월 15일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
[개설]
음력 7월 15일인 백중(百中)은 망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를 올리고 머슴을 쉬게 하는 세시 풍속이다. 이를 백종(百種), 백종절(百種節), 중원(中元),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중’은 절기상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와 백 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은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본래 백중은 불가(佛家)의 승려들이 부처님을 특별히 공양하는 날로 큰 명절로 삼아 왔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일반인까지 참석하여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열었지만 조선 시대 이후 불교의 쇠퇴로 다시 사찰에서만 행하였다. 우란분재는 자손이 끊겨 공양을 받지 못하는 영혼에게 음식을 바쳐 괴로워하는 영혼을 구하는 의식이다.
민간에서는 사찰과 달리 백중을 망혼일이라 하여 달밤에 채소, 과일, 술, 밥을 갖추어 죽은 어버이의 혼에 정성을 드린다고 하였다. 곧 백중은 조상 영혼의 천도, 참회와 중생 제도, 나아가서 일꾼들이 즐기는 농촌 축제의 날이었다.
[연원 및 변천]
조선 후기 한양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문헌인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는 백종절[백중]을 신라의 가배, 즉 베 짜기 시합과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하고, 우란분의 공양과 관련하여 중원일[백중]에 백여 종의 꽃과 과일, 곡식을 부처님께 공양하며 복을 빌었으므로 그 날의 이름, 곧 백종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백종의 의미를 같게 설명하고 있다. 조선 후기 이후 농업의 발달로 그 중요성이 커지면서 백중이 풀베기의 바쁜 농사일을 마치고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기와 비슷해졌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백중날은 어느 정도 농사가 끝나고 그동안 일한 머슴이나 일꾼들에게 수고했다고 잔치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날은 머슴이나 일꾼을 위하는 날이다. 이날은 머슴들에게 돈을 주고 하루 쉬도록 한다. 즉 이제 농사가 끝났다는 의미에서 잔치를 한다. 농사를 제일 잘 지은 머슴을 소에 태우고 돌아다니면 마을의 부자가 닭을 잡고 죽을 끊여 이들과 마을 사람을 대접한다.
진안군 진안읍 종평 마을에서는 백중날 주민들이 모여 농사가 잘된 집에 가서 장원례를 내라고 한다. 술 한 동이를 내놓으면 그것을 나누어 먹으면서 하루를 논다. 백중 무렵이 되면 나락이 익기 시작하는데 이때 익은 것만 훑어다가 솥에 넣고 찐다. 익은 쌀이 많지 않으므로 묵은쌀과 섞어 신곡으로 천신(薦新)을 한다.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길 마을에는 ‘백중날 아침 일찍 논, 밭에 나가면 백석을 감한다.’는 말이 있다. 이날 아침에 그 해의 수확량이 정해지는데, 여자들이 일찍 나가서 돌아다니면 재수가 없어 곡식을 감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자들은 해가 뜬 후에야 비로소 바깥을 출입을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