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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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益堅 |
영어음역 | Kim, ik kyeon |
이칭/별칭 | 이후(而厚)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낙진 |
성격 | 무신|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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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
성별 | 남 |
생년 | 1599년 |
몰년 | 1668년 |
본관 | 청풍(淸風) |
대표관직 | 거창현감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후(而厚).
[활동사항]
김익견(金益堅)[1599~1668]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에서 태어났다. 1624년(인조 2)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 이괄이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과 자신에 대한 정치적 무고에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괄의 군대가 한양을 점령하자 인조는 공주로 피난하였는데, 이때 김익견이 임금을 호종하였다.
그 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이다 10군데 상처를 입었다. 인조는 그의 공을 가상히 여겨 선전관(宣傳官)을 제수하였으나 사양하였다. 후에 제주·언양·거창 등에서 수령을 역임하였고, 벼슬을 마친 뒤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로 내려와 거주하다 1668년(현종 9)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상훈]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