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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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烘宇 |
영어음역 | Gwon Hong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문화·교육/교육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경선 |
[정의]
진주에서 활동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교육가.
[생애]
가난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사재로 야학을 설립하여 가난한 아동들을 교육시키는 데 일생을 바쳤다. 평생을 교육하다 60여세로 작고하였다.
[활동사항]
권홍우(權烘宇)는 가난한 학생들이 돈이 없어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사재를 털어 1923년 제3야학교를 설립하였다. 권홍우는 야학을 통해 문맹률을 타파하는 것은 물론 일제가 세운 보통학교의 식민지교육이 아닌 우리의 민족교육을 위해 학교를 헌신적으로 운영하였다. 팔년 여 동안 팔백 여 명의 무산아동을 양육하였다. 1936년 3월 30일에는 모집정원 80여명으로 당시 진주지역에 설치된 야학교 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선발하였다.
특히 제3야학교가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에 많은 관심과 후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제3야학교의 교육과정은 보통학교의 초등교육과와 비슷했지만 야학교에서는 일본어 교육보다 조선어 보급에 주력하였으며, 조선어 시간에는 은밀히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교육과정이 4년이었지만 향학열과 교육수준은 6년제의 보통학생에 비해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의의와 평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문맹퇴치와 무산 아동들의 교육을 위하여 평생을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대표적인 교육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