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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338
한자 矗石樓詩
영어의미역 Chokseongnu Vers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고정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작가 정을보|하연|하진|정이오|한몽삼|강대수|강렴|정문부|박융
창작연도 고려|조선

[정의]

진주성 내의 촉석루에 걸린 현판의 시.

[개설]

현재 촉석루에는 현판에 새겨진 9편의 시가 걸려 있다. 하륜이 지은 「촉석루기」에는 훌륭한 시영(詩詠)으로 면재 정을보, 우곡 정이오, 상헌 안진[?~1360], 경은 설장수[1341~1399], 급암 민사평[1295~1359], 이재 허선생(누구인지 불명) 등 여섯 명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정을보정이오의 시가 촉석루에 걸려있다.

9편의 시의 작자는 면재 정을보, 경재 하연, 태계 하진, 우곡 정이오, 조은 한몽삼 한사 강대수, 만송 강렴, 농포 정문부, 우당 박융이다.

[내용]

1. 정을보가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정을보촉석루에 걸린 시의 작자들 가운데 가장 시대가 이르다. 생몰년은 불명이나, 충숙왕 7년(1320)에 국자시(國子試)에 합격하였고, 충목왕 1년(1345)에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된 후, 공민왕 1년(1352)에 찬성사(贊成事)가 된 것으로 보아 고려가 망하기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관이 진주이기 때문에 후에 군호(君號)가 청천(菁川)이 되었다. 청천은 남강의 고호(古號) 가운데 하나이다.

黃鶴名樓彼一時

崔公好事爲留詩

登臨景物無增損

題詠風流有盛衰

牛壟魚磯秋草沒

鶖梁鷺渚夕陽遲

靑山四面皆新畵

紅粉三行唱古詞

玉斝高飛山月上

珠簾半捲嶺雲垂

倚欄回首乾坤小

方信吾鄕特地奇

황학이라 이름난 누(각) 저 한 때의 일인데

최공의 수다 덕에 시에 남게 되었지.

올라 보니 경치는 변함이 없건마는

제영의 풍류는 성쇠가 보이누나.

고기 낚고 소 매던 곳 가을 풀은 시들고

백로 수리 노던 물가 석양은 더디 지네.

사방의 푸른 산은 갓 그려낸 그림이요

세 줄로 선 기생들 옛 노래를 부르네.

옥 술잔 높이 드니 산에 달은 올라오고

주렴을 반 걷으니 재엔 구름 드리웠네.

난간 잡고 둘러보매 천지도 작아 뵈니

우리 고을 특출 난 줄 이제 믿게 되누나.

2. 경재 하연의 시는 다음과 같다.

高城絶壑大江頭

冬栢梅花矗石樓

若也登臨留勝跡

請題佳句記吾州

높은 성 깎은 벼랑 큰 강 머리 임한 곳에

동백 매화 우거진 촉석루 서 있구나.

만약에 여기 올라 좋은 자취 남기려면

아름다운 글을 지어 우리 고을 적어

3. 태계 하진의 시는 다음과 같다.

滿目兵塵暗九區

一聲長笛獨憑樓

孤城返照紅將斂

近市晴嵐翠欲浮

富貴百年雲北去

廢興千古水東流

當時冠盖今蕭索

誰道人才半在州

병진이 눈에 가득 온 세상이 어두운데

긴 피리 한 소리에 홀로 다락 기대었네.

외딴 성에 낙조도 붉은 빛을 거두고

저자엔 개인 남기 푸른 기운 떠 있네.

평생의 부귀영화 구름처럼 떠가고

천고의 흥폐는 물과 같이 흘러가네.

당시의 고관대작 이제는 적막한데

그 누가 인재의 반이 진주에 있다던가.

4. 우곡 정이오의 시는 다음과 같다.

정이오는 자가 수가(粹可), 호는 교은(郊隱) 또는 우곡(愚谷)이다. 본관은 진주이며 정을보의 현손(玄孫)이다. 이색정몽주의 문하생으로, 길재와는 친구 사이이며, 문과에 급제해서 벼슬은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다. 진주에서 벼슬생활을 한 적은 없으나, 진주 향교에서 가르친 적은 있다고 한다.

興廢相尋直待今

層巓高閣半空臨

山從野外連還斷

江到樓前闊復深

白雪陽春仙妓唱

光風霽月使君心

當時古事無人識

倦客歸來空獨吟

흥망이 돌고 돌아 지금을 기다렸나

층암절벽 높은 다락 반공에 다다랐네.

들판 건너 산줄기는 이어졌다 끊어지고

누각 앞에 이른 강은 넓어지고 깊어지네.

백설양춘(白雪陽春)은 선기녀(仙妓女)의 노래요

광풍제월(光風霽月)은 사군(使君)의 심사로다.

당시의 옛 일을 아는 사람 없는데

고달픈 손 돌아와 속절없이 읊조리네.

5. 조은 한몽삼의 시는 다음과 같다.

한몽삼은 자는 자변, 본관은 청주이다. 좌찬성을 지낸 한계희의 5대손이며, 박제인·정구·장현광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생원시에 합격한 후 광해군의 폐모 사건을 보고 벼슬길로 나아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군사를 모았으나, 이듬해 화의가 성립되자 해산하고, 함안으로 내려가 석정을 짓고 은거하였다. 자여도찰방에 잠시 나아갔으나 곧 돌아온 후로는 은거생활을 지속하였다. 촉석루에 걸린 한몽삼의 시는 초서로 쓰여 있어 읽기도 쉽지 않다.

天地初開別一區

何年好事起斯樓

層軒遠接靑山影

彩檻低搖碧水流

斗覺登臨如羽化

却疑身世等萍浮

求封萬戶還非分

願夢三刀臥此州

천지간에 처음으로 특별한 곳 열었으니

어느 해 호사가가 이 다락을 세웠는가.

높은 처마에 산 그림자 멀리서 드리우고

채색한 난간 푸른 물에 나즈막히 흔들린다.

올라 보면 갑자기 날개라도 돋는 듯

한 평생이 불현듯 부평처럼 느껴지네.

만호후(萬戶侯) 높은 벼슬 내 분수가 아니니

바라노니 영전하여 이 고을에 누웠으면.

6. 한사 강대수의 시는 다음과 같다.

강대수의 자는 학안(學顔), 호는 춘간, 본관은 진주이다. 1614년 영창대군의 처형을 반대하여 죽게 된 동계 정온을 구하려다가 회양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린 뒤로는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51세 때 진주에 부임하여 1641년부터 3년간 봉직하였다.

戰場無恙只名區

人世虧成百尺樓

納納乾坤遙峀立

溶溶今古大江流

船橫官渡隨緣在

鷗占烟波得意浮

景物有餘佳況少

詩情寥落晉康州

전장에서 별 탈 없기 오직 이 곳 명구런가

무너지고 다시 세운 백 척의 다락이라.

천지에 휩싸 안겨 먼 산은 솟아 있고

고금에 넘실넘실 큰 강은 흐르네.

나루터 가장자리 배는 가로 놓여 있고

연파에 흡족한 듯 갈매기 떠다니네.

경물은 괜찮은데 좋은 일은 적으니

진양이라 강주는 시정도 쓸쓸해라.

7. 만송 강렴의 시는 다음과 같다.

강렴[1544~1606]

南烽日警陷諸州

劍語秋燈對白頭

安待良籌除海祲

君歌我酒更登樓

여러 고을 함락된다 봉화 날로 오르더니

칼 이야기 등불 아래 흰 머리를 마주하네.

바다 요기(妖氣) 없앨 계책 어찌 기다릴꺼나

그대 노래 나의 술로 다시 누에 오르리.

8. 농포 정문부의 시는 다음과 같다.

정문부해주정씨로 1588년에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북평사(北評事)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회녕의 국경인 등이 반란을 일으켜 적에게 투항하자, 산 속에 숨었다가 관민 합작의 의병대장이 되어 관북지방을 수복하였다. 이듬해 영흥 부사, 1597년에 길주 목사를 지낸 후, 1624년에 이괄(李适)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던 끝에 죽었다. 뒤에 신원이 되어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龍歲兵焚捲八區

魚殃最慘此城樓

石非可轉仍成矗

江亦何心自在流

起廢神將人共力

凌虛天與地同浮

須知幕府經營手

壯麗非徒鎭一州

임진년 전화(戰火)가 팔도를 휩쓸 적에

무고한 재앙 이 성루에 가장 처참하였어라.

굴릴 수도 없는 돌 이내 촉석 이루었고

강은 또한 무슨 맘에 절로 절로 흐르는가.

폐허를 일으킴에 신과 사람 힘 모으고

허공을 능지르니 천지가 함께 떴네.

모름지기 알리라 막부의 경영 솜씨

한 고을만 장려하게 진압할 뿐 아님을

9. 우당 박융의 시는 다음과 같다.

박융의 자는 유명(惟明)이고 본관은 밀양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군수에 이르렀다.

晉山形勝冠南區

況復臨江有此樓

列峀層巖成活畵

茂林脩竹傍淸流

靑嵐髣髴屛間起

白鳥依稀鏡裡浮

已識地靈生俊傑

盛朝相繼薛居州

진산의 형승이 남쪽에서 으뜸인데

하물며 강가에 이 누각이 있음에랴.

펼쳐진 산 층암절벽 그대로 그림이요

무성한 숲 긴 대나무 맑은 물 곁에 있네.

푸르른 산 기운은 병풍 사이 이는 듯

흰 새는 어렴풋이 거울 속에 떠 있는 듯

땅이 영험스러워 준걸 난 줄 알겠노니

성조에 착한 신하 끊이잖고 나오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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