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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성문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346
한자 矗石城門記
영어의미역 Record of the Chokseokseong Castle Gat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500-8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편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기문
관련인물 하륜(河崙)

[정의]

여말선초의 문신 하륜이 지은 촉석성 공사과정을 기록한 기문.

[개설]

하륜(河崙)[1347~1416, 충목왕 3~태종 16]은 진주에서 태어나 고려 말, 조선 초를 거쳐 진주에서 인생을 보낸 인물로서 진주성, 촉석루 등에 기문을 지어 진주의 역사적 경관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그 중 하나가 「촉석성문기(矗石城門記)」로 촉석성은 지금의 진주성을 의미한다. 그 성을 왜 쌓아야 했는지, 어떻게 그 공사가 이루어졌는지, 그 규모는 어떠했는지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구성과 형태]

글은 한문으로 되어 있고 특별한 전형적인 기문의 형식을 보인다.

[내용]

이 기문의 주된 내용은 성의 모양과 구조 그리고 성을 쌓는 동안 관리와 백성들의 노고, 성벽의 보수와 완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예전에는 살기 좋았던 마을에 언제부터인가 해적과 왜구의 침입이 잦아졌다. 그들을 막기 위해 토성을 쌓았으나 오래 견디지 못하였다. 결국 1379년 공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때도 왜구가 쳐들어와 반 정도만 완성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왜구가 물러간 후에 다시 쌓고 수리하여 마쳤다.

총각시절 이곳에서 놀며 학문을 익히고, 늘 성 주위를 돌며 살펴도 축성 연대를 알 수 없었다. 주변의 나이 든 노인들에게 물어봐도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정사년(丁巳年, 1377)에 조정의 논의에 따라 고을 사람들이 옛 성터에 흙으로 성벽을 쌓았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후 기미년(己未年, 1379) 가을에 다시 쌓아서 도적떼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뒤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주도하여 성벽을 다시 보수하고 완성하였는데, 성의 둘레가 팔백보이며 높이는 스물 넉자가 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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