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642 |
---|---|
한자 | 黃進 |
영어음역 | Hwang Jin |
이칭/별칭 | 명보(明甫),무민(武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태남 |
성격 | 무신 |
---|---|
아버지 | 황윤공(黃允恭) |
성별 | 남 |
몰년 | 1593년 |
본관 | 장수(長水) |
자 | 명보(明甫) |
시호 | 무민(武愍) |
제향 | 창렬사(彰烈祠)[경상남도 진주]|민충사(愍忠祠)[전라북도 남원] |
대표관직 | 동복현감(同福縣監)|익산군수|훈련원판관|충청도병마절도사 |
[정의]
조선 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영의정을 지낸 황희(黃喜)의 5대손이며, 좌의정에 추증된 황윤공(黃允恭)의 아들이다.
[생애]
1550년(명종 5) 출생하여 1593년(선조 26)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할 때까지 일생을 무장으로서 활약하였다. 평소 인품이 중후하고 절개가 남달리 굳었으며, 힘세고 날쌨다.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1년 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서 일본이 반드시 우리나라를 침입해 올 것이라 경고하였다. 전라도 화순 동복현감(同福縣監)으로 있으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병법을 습득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원·상주 등지에서 적을 크게 무찔러 공을 세우고 훈련원판관, 익산군수를 거쳐 충청도병마절도사가 되었으나 1593년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성을 사수하다 적탄을 맞고 전사하였다.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李光)을 따라 군대를 이끌고 용인에 이르렀으나 왜군에게 패전하여 남하하다가 진안에 침입한 왜적의 선봉장을 사살하고, 이어 안덕원(安德院) 및 이치(梨峙)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1593년 2월 전라병사 선거이(宣居怡)를 따라 수원에서 적과 싸우고, 3월에는 충청도병마절도사가 되어 안성의 죽산성에서 왜군을 격파하고 퇴각하는 적을 상주까지 추격하여 대파시켰다. 이 해 6월 왜군이 진주성을 다시 공격하여 오자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진주성을 사수하다 실패하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 황진의 공을 기려 좌찬성에 추증하고 고향에 정문을 세우게 하였다. 경상남도 진주 창렬사(彰烈祠)와 전라북도 남원 민충사(愍忠祠)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무민(武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