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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366
한자 仁川都護府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영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460년연표보기 - 인천군이 인천 도호부로 승격

[정의]

조선 시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지역의 지방 관아 또는 행정 구역 이름.

[개설]

고려 시대 수주(水州)의 한 속현이었던 소성현은 인주 이씨가 왕실의 외척이 되면서 비로소 인주(仁州)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고려 말에 이르면 경원부(慶源府)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경원부는 1392년(공양왕 2)에 경기도를 확장하고 좌도와 우도로 도를 나눌 때, 양광도(楊廣道)에서 경기로 편입되었다. 이후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세우고 나서는 경원부는 1392년(태조 원년)에 인주가 되었다가 1413년(태종 13)에는 지방 제도 개편과 함께 군이나 현에 ‘주(州)’ 자가 들어 있는 고을은 주 자 대신 ‘산(山)’ 자나 ‘천(川)’ 자로 고치게 하였기 때문에 인천군으로 개칭되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인천(仁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렇게 태종이 지방 제도를 개편한 것은 고려 시대에는 목사(牧使)가 수령인 고을이 주였으나, 지관(知官)이나 감무(監務)가 수령인 군·현에도 ‘주’ 자가 붙어 있는 고을이 많았기 때문에 태종이 주·부·군·현의 등급을 명확히 하고자 바꾸게 하였던 것이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인천도호부의 건치 연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현(買召忽縣)이다. 또는 미추홀(彌趨忽)이라 한다.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소성(邵城)으로 고치어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을 삼았다. 고려 현종(顯宗) 9년에 수주(樹州)에 붙였고, 숙종(肅宗) 때에 인예 왕후(仁睿王后) 이씨(李氏)의 본관이므로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하였고, 인종(仁宗)이 또 순덕 왕후(順德王后) 이씨(李氏)의 본관이므로 지인주사(知人州事)로 고치고, 공양왕(恭讓王) 2년에 경원부(慶源府)로 승격하였다. 왕이 처음에 즉위하여 칠대 어향(七代御鄕)이라 하여 승격시키고, 또 고을 호장(戶長)에게 붉은 가죽띠를 주었다. 본조(本朝) 태조(太祖) 원년에 다시 인주(仁州)로 만들었고, 태종(太宗) 13년에 지금 이름으로 고치어 예에 의하여 군으로 만들었고, 세조(世祖) 6년에 소헌 왕후(昭憲王后)의 외가 고을이므로 승격하여 도호부로 만들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제9권 경기 인천도호부)

[내용]

인천군은 1460년(세조 6)에 이르러 인천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인천군이 인천도호부로 승격된 것에 대해 『인천광역시사』에서는 ‘세조 6년(1460)에 인천이 도호부로 승격된 것은 세조의 어머니인 소헌 왕후 심씨의 외향이었기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어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건치 연혁 조(建治沿革條)의 내용과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인천광역시사』 축쇄본에서는 도호부로 승격된 것이 세조의 비(妃)인 정희 왕후 윤씨의 외향이었기 때문이라고 수정하고 있다.

또한 『인천광역시사』에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된 강희맹의 「승호기」를 인용해서 인천의 명문가인 문씨의 딸이 소헌 왕후의 아버지인 심온(沈溫)을 낳았다 하여, 인천이 소헌 왕후의 진외가(陳外家)가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왕비의 진외가라 하여 군현을 승격시킨 예는 찾을 수 없으며, 강희맹의 「승호기」 역시 소헌 왕후와 인천이 도호부로 승격된 사실을 연결시키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 오히려 인천이 왕비를 배출한 고장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으며 인주 이씨의 사위인 윤번이 지금의 왕비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인천군이 인천도호부로 승격된 것은 세조의 비인 정희 왕후 윤씨의 외가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에 소헌 왕후와 관련된 기록은 『세조실록(世祖實錄)』 세조 5년 6월 14일자에 나오는데 거기에는 청송군을 승격시켜 도호부로 삼는 내용이 있다. 그러므로 세조 5년에 소헌 왕후의 내향이라 해서 청송군을 도호부로 승격시킨 기록을 인천의 도호부 승격으로 잘못 옮겨 적은 것으로 보인다.

[변천]

도호부로 승격되었던 인천은 1688년(숙종 14)에 승려 여환(呂還) 등이 모반을 꾀하였다 하여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97년(숙종 23)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812년(순조 12) 진채(振采)의 역모 사건으로 현으로 강등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23부제 실시에 따라 인천부가 설치되는 등의 변화를 겪게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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