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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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一運動 |
이칭/별칭 | 기미 독립 운동,기미운동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현석 |
성격 | 사회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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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단체 | 이보경|이무경|오주선|최선택|이창범|이재경|이상태|최개성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9년 3월 27일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주안동 일대에서 3·1 운동 발생 |
발생|시작 장소 | 경기도 부천군 문학면 관교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
[정의]
1919년 3월 27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등지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개설]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거족적인 민족 운동인 3·1 운동이 일어나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서는 이보경, 이무경, 오주선, 최선택, 이창범, 이재경, 이상태, 최개성 등이 주동하여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경과]
1919년 3월 6일, 지금의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 소재 창영 초등학교의 전신인 인천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동맹 휴학을 시작하며 인천 지역에서의 3․1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후 1919년 3월 9일 지금의 인천광역시 중구 소재 자유 공원의 전신인 만국 공원에서 청년·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고, 1919년 3월 12일과 3월 13일 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소재 강화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 시위 운동과 1919년 3월 18일 강화 읍내 만세 시위 운동으로 이어졌다. 1919년 3월 21일부터 3월 24일까지 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교동도에서, 그리고 1919년 3월 24일부터 3월 25일까지 지금의 인천광역시 계양구 장기동 소재 황어 장터에서 만세 시위 운동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해당하는 경기도 부천군 문학면 관교리에서 이보경, 이무경, 오주선, 최선택, 이창범, 이재경, 이상태, 최개성 등이 주동하여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날인 1919년 3월 27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일대에서도 소규모의 시위가 전개되었다.
[결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서 발생한 3․1 운동 주동자들은 1919년 5월 15일 경성 지방 법원에서 모두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1919년 7월 18일 주동자 8명 중 최개성을 제외한 7명이 항소하였으나 기각 당하였고, 1919년 9월 29일 최선택, 이창범, 이상태 3명이 상고하였으나 역시 기각당하면서 형이 확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의 3․1 운동은 인천광역시 중구 지역에서 시작해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도와 교동도, 인천광역시 부평 지역을 거쳐 진행된 만세 시위 운동이 인천광역시 전 지역으로 확산되어 가는 전환점에 위치한 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