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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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雲下 |
영어공식명칭 | Baeg Un-ha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하지영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백운하 의병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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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08년 8월 21일 - 백운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4년 8월 15일 - 백운하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백운하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의병 |
[정의]
개항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의병장.
[개설]
백운하(白雲下)[?~1908]는 1908년경 경상남도 밀양시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던 중 일제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 전국에서 수많은 의병들이 부대를 조직하여 일제의 침탈에 저항하였다.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지리산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나, 경상남도 밀양과 양산(梁山)을 잇는 산악 지대에서도 여러 의병들이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서병희(徐炳熙)와 경상북도 산청(山淸) 출신의 박동의(朴東義) 부대의 활동이 활발했는데, 1908년 5~6월 무렵 서병희 부대가 양산에서 밀양의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1907년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백운하가 6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부대를 편성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백운하는 경상남도 밀양과 경상북도 청도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이는 한편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도 하였다. 1908년 8월 21일 백운하는 부하 6명과 함께 밀양군 무안동(武安洞)[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인근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 사실을 탐지한 일본군 밀양수비대는 무안동으로 병력을 급파하였는데, 수색 끝에 백운하 등 7명을 모두 체포하였다. 일제 수비대에 체포된 백운하는 1908년 8월 21일 부하들과 함께 총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4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