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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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金氏 |
영어공식명칭 | Milyang Kimssi|Milyang K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태수 |
본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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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산내면 -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
성씨 시조 | 김승조 |
[정의]
김승조를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밀양시의 세거 성씨.
[연원]
밀양김씨(密陽金氏)의 시조(始祖)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13세손 김승조(金承祖)로, 호는 홍의재(弘毅齋)이다. 김승조는 상장군(上將軍) 김신우(金信佑)의 맏아들로 고려조(高麗朝)에서 사직(司直)을 지냈으며, 1272년(원종 13) 김방경(金方慶)의 막하장(幕下將)이 되어 삼별초(三別抄)의 난(亂)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밀성(密城)[현 경상남도 밀양시의 옛 지명]의 군(君)에 봉하여졌다. 이에 후손들이 경상북도 경주(慶州)에서 분적(分籍)하여 경상남도 밀양(密陽)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인물]
밀양김씨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시조 김승조의 아들 김혁(金赫)이 별좌(別坐)를 거쳐 찬성사(贊成事)에 올랐으며, 김혁의 아들 김희천(金禧天)은 검열(檢閱)·판관(判官) 등을 거쳐 병부사(兵部事)에 올랐다. 조선 태종(太宗)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밀양부사(密陽府使)를 지낸 김광석(金廣碩)은 시랑(侍郞) 김영추(金英秋)의 둘째 아들로서 평안남도(平安南道) 순천(順川) 및 개천파(介川派)와 함경북도(咸鏡北道) 경원파(慶源派)의 파조(派祖)가 되었다. 김광석의 형 김수서(金秀瑞)는 승지(承旨)를 지냈다.
1465년(세조 10) 문과에 급제한 김문호(金文虎)는 의주부윤(義州府尹)을 역임하였고, 김문호의 증손자 김광후(金光厚)와 김홍준(金弘濬)이 뛰어났다. 1553년(명종 8) 문과에 급제한 김광후는 군자감정(軍資監正)을 거쳐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지냈고, 김홍준은 이등공신(二等功臣)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한 후 만년에는 경기도에서 충청남도 서산으로 낙향하여 서산파(瑞山派)의 파조가 되었다. 김견(金堅)은 선조 때 선전관(宣傳官)·주부(主簿)를 역임하였는데, 1559년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의 휘하로 들어가 당항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그 밖의 인물로는 인조(仁祖) 때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거쳐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을 지낸 김홍발(金弘發)과 진무일등공신(振武一等功臣) 김경발(金景發) 형제가 유명하다. 또 선략장군(宣略將軍)과 옥과현감(玉果縣監)을 역임한 김수발(金粹發)은 하동현감(河東縣監) 김상명(金尙鳴), 통훈대부(通訓大夫) 김시명(金始鳴),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중명(金重鳴)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김양선(金亮善)은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고 강직한 성품과 탁월한 학문(學問)으로 덕망이 높아 칭송을 받았으며, 경기도(京畿道) 고양파(高陽派)의 파조가 되었다. 또한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김덕령(金德齡), 공조참의(工曹參議) 김수주(金壽柱), 이조참의(吏曹參議) 김광호(金匡昊), 개성부경력(開城府經歷) 김종환(金宗瑍), 학자(學者) 김상민(金相敏) 등이 밀양김씨 가문을 대표하였다.
[세거지]
밀양김씨의 경상남도 밀양에서의 집성촌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일원이다.
시조 김승조 이하 5세 김영추에 이르는 상계가 살았던 곳은 경상북도 경주의 금산과 경기도 고양이라 한다.
김영추의 아들 김수서가 고려 공민왕 때에 경상북도 금릉(金陵)[현 경상북도 김천시의 옛 지명]으로 유배된 뒤에 금릉에서 살다가 김수서의 손자 대에 각지로 산거하였다.
8세 김윤신이 경상북도 금릉에서 전라남도 영암으로 옮겨 갔으며, 김윤신의 자손들이 전라남도 영암을 비롯하여 전라도 일원에 세거하였다.
김윤신의 증손 김견의 후계가 영암과 전라북도 무안·김제·임실 등지에 살았고 김견의 동생 김철의 후계는 전라북도 김제, 전라북도 전주의 남평, 전라남도 해남·곡성에, 김곽의 후계는 전라남도 영암·목포 등지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또한 김용의 후계는 선대가 세거하였던 경기도 고양에서 14세 김수인의 대 이래로 경기도 파주를 비롯하여 경기도 일원에 폭넓게 산거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8세 김광석이 평안남도 은산[현 평안남도 순천시]으로 옮겨간 뒤에 자손들이 평안남도 순천군[현 평안남도 순천시] 일대에 세거하였으며 김광석의 동생 김윤택의 자손들은 김윤택이 경상북도 금릉에서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으로 가 터를 굳힌 이래로 경기도 포천·양천[현 서울특별시 양천구와 강서구]·가평 등 경기도 일원에 나뉘어 살았다.
1930년경에 이르러 밀양김씨의 자손들은 경기도 포천군 내천면·개풍군 영남면·양주군 은현면, 충청남도 서산군 지곡면, 전라북도 김제군 봉남면,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학산면, 경상남도 밀양군 산내면, 평안남도 순천군 내남면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현황]
밀양김씨는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1985년에는 1,929가구 8,888명, 2000년에는 3,009가구 9,951명, 2015년에는 9,20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