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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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魯氏 |
영어공식명칭 | Milyang Noh ssi|Milyang Noh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태수 |
[정의]
노중연을 시조로, 노형권을 임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밀양시의 세거 성씨.
[연원]
밀양노씨(密陽魯氏)의 선계(先系)는 전국시대 제(薺)나라 사람인 노중연(魯仲連)으로 전한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노중연은 위(魏)나라와 조(趙)나라가 진시황(秦始皇)을 제(帝)로 모시려 할 때 “차라리 동해(東海) 물에 빠져 죽을지언정 진(秦)을 제(帝)로 모신다는 말은 듣기를 원치 않는다.” 하며 반대하여 진시황을 축출하는 데 공을 세웠다 한다.
우리나라 노씨는 노중연의 손자 노계(魯啓)가 기자(箕子)가 동래(東來)할 때 함께 조선에 들어와 강화(江華)에 정착하여 연원(淵源)을 이루게 되었다.
[입향 경위]
노계(魯啓)의 원손(遠孫)인 노형권(魯衡權)이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내고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을 토평하는 데 공을 세워 밀산군(密山君)[밀산은 밀양의 옛 지명]에 봉하여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노중연을 시조로 하고, 노형권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관향(貫鄕)을 밀양(密陽)으로 삼아 세계를 계승하여 왔다.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노형권의 아들 노서(魯恕)가 조선시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노서의 손자 노복(魯馥)은 외직인 군수(郡守)를 역임하여 참의(參議)를 지낸 노요좌(魯堯佐)[군수 복의 아들], 참판(參判) 노식(魯植)[참의 요좌의 아들]과 함께 명성을 떨쳤다. 그 외에 판사(判事) 노천보(魯天輔)의 아들 노의(魯誼)가 밀직사(密直使)를 지냈고, 오위장(五衛將) 노공보(魯公輔)의 아들 삼형제 중 맏아들 노겸(魯謙)은 통훈대보(通訓大夫)에 올랐으며, 둘째 노찬(魯讚)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현황]
밀양노씨는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1985년에는 423가구 1,925명, 2000년에는 391가구 1,268명, 2015년에는 777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