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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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居 姓氏 |
영어공식명칭 | Residing Family Nam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병련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아온 친족 집단.
[변천 및 현황]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밀양의 토성으로는 손씨(孫氏), 박씨(朴氏), 변씨(卞氏), 금씨(金氏), 조씨(趙氏), 변씨(邊氏), 양씨(楊氏)가 확인된다. 이 중 박씨는 고려 중기부터 상경종사(上京從仕)하여 사족으로 성장하였고, 조선 전기에는 사림파(士林派)와 훈구파(勳舊派) 가문이 경향(京鄕)에 포열한 대성(大姓)이 되었다.
밀양 ‘향사당좌목(鄕社堂座目)’에는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한 박윤문(朴允文), 박의중(朴宜中)을 필두로, 조선 전기 명정승 황희(黃喜), 학문과 문장으로 명성이 높아 20년간 조선 초기의 문형(文衡)을 잡았던 변계량(卞季良) 형제, 영남 사림파의 종장(宗匠)이었던 김종직(金宗直) 등 당대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나열되어 있으며, 그 외 밀양에 세거하고 있는 사족(士族) 가문에서 현조(顯祖)로 추숭(追崇)하고 있는 인물들이 확인된다.
좌목(座目)에 기재된 40명의 성관(姓貫)별 분포를 살펴보면 밀양박씨(密陽朴氏) 21명, 밀양손씨(密陽孫氏) 3명, 밀양변씨(密陽卞氏) 2명, 광주안씨(廣州安氏) 2명, 여주이씨(驪州李氏) 2명, 진양강씨(晋陽姜氏) 2명, 일직손씨(一直孫氏) 1명, 재령이씨(載寧李氏) 1명, 평산신씨(平山申氏) 1명, 장수황씨(長水黃氏) 1명, 풍천노씨(豊川盧氏) 1명, 선산김씨(善山金氏) 1명, 여산송씨(礪山宋氏) 1명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단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공양왕의 증조모를 배출하기도 한 토성(土姓)인 밀성[밀양]박씨이다. 밀성[밀양]손씨와 밀양변씨도 그 수에서는 밀양박씨와 많은 차이가 나지만 타관(他貫)에 비하여 뒤지지는 않는다. 손씨도 조선 전기에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며 사족으로 성장하였고, 변씨도 조선 전기에 변계량 형제를 배출하며 명문 사족 가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고려 중기부터 밀양 토성 출신들이 상경하여 중앙 관직에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타관(他貫)의 세력 가문들과 혼인관계를 맺었으며, 이런 연고로 처향(妻鄕) 또는 외향(外鄕)을 따라 밀양에 정착한 타관의 명문 사족들도 세거할 수 있게 되었다. 밀양이 조선 전기 이른바 영남 사림(士林)의 연수(淵藪)라 불린 것은 고려 중기 때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 토성(土姓)들의 활발한 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정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정변, 즉 왕자의 난, 계유정난, 연산조의 사대사화, 중종반정, 임진왜란, 인조반정 등과 맞물려 성리학적 윤리질서가 향촌사회에 정착되는 과정에서 밀양 지역 세거 성씨의 성쇠도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정국군 박위의 살해, 변중량의 죽음, 김종직의 부관참시와 박한주의 죽음, 영의정 남곤에 대한 평가절하 등은 대표적이고, 특히 인조반정은 향촌세력의 판도를 흔들었다.
이렇게 재편된 밀양의 대표적 세거 성씨는 큰 범주로 세칭(世稱) 방조(榜曺)[취원당 조광익을 중시조로 하며, 초동면 오방리, 무안면 중리와 모로 등을 포괄], 진리(進李)[성산군 이식을 중시조로 하며, 무안면 내진, 상남면 조음, 초동면 명성, 귀명 등을 포괄], 여리(驪李)[진사 이원, 금시당 이광진, 월연 이태를 중시조로 하며, 밀양읍 용평, 활성, 부북면 퇴로 등 포함], 후박(後朴)[은산군 박영균, 행산군 박세균을 중시조로 하며, 모헌 박양춘, 국담 박수춘, 모선정 박수견, 박지 등을 중심으로 부북면 후사포를 중심으로 초동면 새터, 새월까지 포괄], 신(申)[낙진당 신승준, 송계 신계성의 평산신씨로 예림, 중산 등을 포괄], 안(安)[둔옹 안엄경을 중시조로 하는 광주안씨로 송와 안명하, 모렴당 안인, 오휴자 안신, 낙원 안숙 등을 중심으로 부북면 전사포와 초동면 금포와 성만 등을 포괄], 양손(兩孫)[일직손씨와 밀성손씨를 말하는데, 부사 손관과 격재 손조서를 중시조로 하면서 산외면 다죽리 등을 포괄하는 일직손씨와 추천 손영제와 오한 손기양을 중시조로 교동과 다죽리 등을 포괄하는 밀성손씨], 남김(南金)[양무공 김태허와 구옹 김태을을 중시조로 하며 하남읍 대사리를 중심으로 함], 북리(北李)[죽담 이유근의 손자 호군 이선지를 중시조로 하는 함평이씨로 오례, 퇴로, 월산 등지를 포괄], 운류(雲柳)[죽담 유분을 중시조로 무안면 운정 등지를 포괄], 정박(鼎朴)[정국군 박위를 중시조로 하며, 정곡과 삼태 등을 포괄] 등을 거론하게 되었다. 그 외 타지에서 이주한 사족들이 매우 많았는데, 삼랑진과 하남 파서막의 여흥민씨[강호 김숙자의 외손 가문으로 욱재 민구령 오형제], 하남 명례리의 전주이씨[효령대군의 후손인 낙주재 이번], 무안 마흘리의 충주석씨[운포 석여신]. 단장면 사촌, 안법리의 의령남씨[지족당 남오, 조암 남필문], 청도면 소태, 두곡의 청도김씨[영헌공 김지대], 한목리 등의 아산장씨[농은 장충범, 부사 장효범], 한목의 진양하씨[사직 하비, 영모재 하재정]와 장수황씨[낙하 황학], 하남 남전의 옥산전씨[추파 전억기], 부북 위양의 안동권씨[학산 권삼변], 부북 가산의 순창설씨[송재 설형, 항재 설찬]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이주 사족들이 세거하고 있었다. 또한 고려 이래의 오래된 사족이지만 주된 세력이 밀양에서 이웃 고을로 옮겨간 성씨도 있는데, 함안과 김해로 이주한 재령이씨[사재령 이일선, 지평 이신, 모은 이오, 관천재 이대형]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