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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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城 丹芝峯 戰鬪 |
영어공식명칭 | Battle of Anseong Danjib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상원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0년 12월 3일 - 안성 단지봉 전투 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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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시기/일시 | 1950년 12월 4일 - 안성 단지봉 전투, 인민군의 공격으로 다수의 부상자 발생 |
종결 시기/일시 | 1950년 12월 19일 - 안성 단지봉 전투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단지봉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
성격 | 전투 |
관련 인물/단체 | 무주 경찰|학도의용대 |
[정의]
1950년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단지봉에서 벌어진 무주 경찰, 학도의용대와 인민군과의 전투.
[역사적 배경]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에는 6·25 전쟁을 목전에 두고 유격 활동을 해오던 남로당의 이현상(李鉉相) 빨치산 부대가 집결해 있었는데, 6·25 전쟁이 발발한 후인 7월 21일 덕유산에서 안성으로 내려와 무주군을 점령하였다.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유엔군과 국군이 반격을 시작하자 무주를 점령하고 있던 인민군도 9월 28일 밤을 이용하여 후퇴하였다. 무주 지역의 산악 지역에는 낙동강 전투에서 패전하고 쫓기는 인민군과 의용군 패잔병이 퇴로와 숨을 곳을 찾아 몰려들어 2,000여 명이 덕유산에 운집하였다. 11월 25일 무주 경찰서장으로 부임해 온 김두운 서장은 학도의용대를 창설하였다. 학도의용대는 경찰로부터 무기를 지급받아 무주에 주둔하고 있던 전투 경찰 병력과 공조하여 주요 지역 경계 근무와 미수복 지역 수복을 위한 작전을 전개하였다.
[경과]
1950년 12월 3일 경찰 병력 260명과 학도의용대 60명으로 전투대를 편성하고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단지봉으로 출동하여 단지봉 고지를 성공적으로 탈환하였다. 12월 4일에 전초 기지에서 매복 근무 중이던 학도의용대와 경찰이 인민군의 공격을 받아 학도의용대 10여 명과 경찰 수 명이 전사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안성 단지봉 전투는 12월 중순까지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700명에 달하는 대병력에 중무장을 한 공비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안성 지역 수복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지역 주민 300명을 대동하고 진안군 동향면 방향으로 후퇴하였다. 그리고 안천면과 금산군 부리면을 거쳐 12월 19일 무주읍으로 귀대하였다.
[결과]
무주 경찰은 전사 3명과 부상 3명의 피해를 입었으며, 학도의용대는 이점용[무주중 2학년], 김봉덕[무주중 3학년], 이배원[대전 사범 2학년] 등 전상자가 11명이나 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 후 무주군 안성면 지역은 국군 제 11사단 화랑 부대가 들어와 본격적인 토벌 작전을 전개할 때까지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단지봉에는 안성 단지봉 전투 중 전사한 경찰과 학도의용대의 넋을 기리기 위해 단지봉 경찰 전적비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