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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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會 |
영어공식명칭 |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티길 53-2[대유리 136-1]|노루재로 540[장안리 121]|무주읍 단천로 71[읍내리 799]|당산길 17-14[당산리 767]|앞섬1길 11-12[내도리 1731-4]|무설로 136-1[오산리 293-2]|향학로 63[읍내리 335-2]|무풍면 현내로 238[현내리 313-7]|증산로 87-3[증산리 590-1]|적상면 상중리길 12[포내리 1091-71]|여용로 70[삼가리 1665-2]|설천면 하평지길 14[소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천식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에 의해 결합된 신자들의 공동체 또는 그 공간.
[개설]
보통 ‘교회(敎會)’라 하면 뾰족한 탑에 십자가가 있는 건물로 인식하는데, 사전적 의미는 성령에 의해 결합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영어로 ‘Church’는 헬라어 퀴리아코스(Kyriakos)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주께 속한’ 또는 ‘주의 집’을 뜻한다. 그러나 신약에서 교회에 해당하는 것은 시민의 공적 집회를 뜻한다. 이는 에클레시아(Ekklesia)라는 단어로 표현되며, ‘밖으로 불러내다’는 어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신자들의 공동체는 예수의 사역과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지켜본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베드로·야고보·요한·마가 등 예수의 제자들, 예수의 이모 살로메, 막달라 마리아,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등이었다. 그들과 함께 120명의 신도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간 후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그들에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는데, 이를 그리스도 교회의 태동이라 할 수 있다.
교회라는 명칭에 관해서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마태복음』 16장 18절[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에 교회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예수가 처음으로 이를 표현하였고, 이 후 『사도행전』에서는 오순절(五旬節)에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11 제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이때 수천 명이 감동 받게 되는데, 이것이 교회의 출발점이 된 것과 교회가 기독교 공동체의 정식 명칭이 된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무주 지역 교회 역사]
한국 선교를 위해 미국 남장로회에서 1892년(고종 29) 7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이들을 일컬어 7인의 선발대[band of seven pioneers]라 칭하며, 리니 데이비스(Linnie Davis)·윌리엄 맥클리리 전킨(William McCleery Junkin)·메리 레이번(Mary Leyburn)·윌리엄 데이비스 레이놀즈(William Davis Leynolds)·펫시 볼링(Patsy Bolling)·루이스 보이드 테이트(Lewis Boyd Tate)·마티 새뮤얼 테이트(Mattie Samuel Tate)이다. 7인이 한국에 도착한 이듬해 서울에서 장로회 공의회가 조직되었다. 장로회 공의회에서 미국 남장로교 선교 팀이 충청남도 일부와 호남 지역을 선교 활동 지역으로 결정함에 따라 1893년(고종 30)부터 테이트·전킨·레이놀즈 등 선교사들이 차례로 호남 지역을 답사차 다녀갔다. 1894년(고종 31)에 테이트 선교사 남매가 전주에 거처를 정하고 6개월간 체류하였고 1896년(고종 33) 본격적인 선교 활동에 들어갔다. 그 무렵 호남 지역 거점 센터인 전주 선교부가 정식 출범되었다. 이후 선교사들은 전주를 중심으로 서북부 지역인 김제·군산, 동북부 지역인 완주군·진안군 등지로 확대하여 선교 활동을 펴게 되었다.
무주 지역의 복음 전파는 루터 올리버 맥커친(Luther Oliver McCutchen)[한국명 마로덕] 선교사에 의해 1904년(고종 41)부터 본격화되었다. 당시는 전주에서 진안군으로만 가더라도 험한 고갯길을 넘어가야 하는 등 가기 어려운 곳이었음을 짐작할 때 무주는 더 말할 나위 없는 오지였다. 그러나 마로덕 선교사는 말을 타거나 걸어서 마을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마로덕 선교사는 무주 지역 초대 교인들과 원활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히 증산 교회 이경문을 전도인으로 임명하여 이경문과 함께 무주군 설천면 두길 교회, 적상면 여올 교회, 안성면 이목 교회, 무주읍 무주 장로교회 등을 설립하였다. 선교사로는 마로덕 외에 엘머 티머시 보이어(Elmer Timothy Boyer)[한국명 보이열], 윌럼 먼로 클락(Willam Monroe Clark)[한국명 강운림]이 무주 지역 기독교 전래에 힘썼다.
마로덕과 함께 무주 지역에서 전도 활동을 한 한국인으로는 최중진·최광진·최대진 삼형제가 있었다. 특히 김필수는 뛰어난 한학 지식이 있었고 당시 신흥 학교 교사로 있었기 때문에 선교사의 조사(助師)로 무주에서 활동할 때 순회 전도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을 교육하고 모임을 이끌어 가는 능력을 발휘하여 무주 지역 복음 전파에 큰 힘이 되었다. 또한 마로덕 선교사가 시행한 성경 학교에 무주 지역 사람들도 대거 참여하여 교육 받은 후 각자 거주지로 돌아가 교회 성장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무주 지역 교회 역사에 기록될 만한 공헌이 되고 있다.
[무주 지역 교회 현황]
무주 지역의 교회 현황을 보면 장로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장로교단으로는 예수교 장로회와 기독교 장로회가 있다. 예수교 장로회에는 합동과 통합 두 개의 교단[종파]이 있는데, 합동 측 장로교로는 대유 제일 교회를 포함하여 8개 교회가 있고 통합 측 교회로는 구천동 교회를 포함하여 30개가 있다. 그밖에 기독교 침례회 소속 세 개 교회,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소속 두 개 교회, 기독교 장로교회와 기독교 성결 교회와 백석 장로회 교회 각각 한 개 등 무주 지역에 총 50여 개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