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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383
한자 阿谷里
영어음역 Ago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병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행정리
면적 207.2㏊
총인구(남, 여) 143명(남자 77명, 여자 66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74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아영면에서 제일 먼저 형성된 마을로 전해지는 아곡리는 위치가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대인 아막성(阿莫城)의 성역이라 하여 아실이라 했는데 한자로 옮기면서 아곡(阿谷)이 되었다.

[형성 및 변천]

통일신라 초기 달성서씨 일가가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후 서씨들이 타지방으로 이주하고 재령이씨, 함양오씨 등이 정착하면서 농사를 지어 마을이 커졌다.

이후 평강채씨 등 여러 씨족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번창하였다. 일설에는 남북국시대 때 연안이씨들이 처음 터를 잡았다고도 한다.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으로 아용부곡(阿容部曲)이 있어 아실 또는 아요곡, 아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아곡(阿谷), 점촌(店村), 당동(唐洞) 일부를 병합하여 아곡리라 하고 남원군 아영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남원시·남원군 통합으로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가 되었다. 과거 운봉군 북상면의 면소재지였다.

[자연환경]

앞산에는 베틀바위가 베를 짜는 형상으로 마을을 굽어보고 있으며 베틀바위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웃돗치[鳴石峙]가 있다. 마을 뒤쪽으로는 경사가 심한 산이 있으며 산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무성하다. 하천은 없고 개울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다. 해발고도는 450m이다.

[현황]

아영면 소재지로부터 서남 방향으로 약 7㎞ 지점에 위치한 산간 마을이다. 2007년 기준 면적은 207.2㏊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74세대에 143명(남자 77명, 여자 6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요 소득원은 쌀이다. 최근에 고랭지 감자와 채소 재배로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밤과 감도 생산되고 있다. 토지 이용은 밭이 18.7㏊, 논이 53.3㏊, 임야가 124㏊ 등이다.

유적으로는 아곡리에 삼국시대의 유적으로 알려진 4층 석탑이 있었으나 일본인이 도굴해 갔다고 한다. 현재 아곡리 입구에는 ‘아영고지(阿英故地)’라 새겨진 비석이 있다. 원래의 비석은 1968년 3월경 도굴꾼에게 도난당하였으며 현재의 비석은 동년 6월 마을의 유지였던 이인호가 사제를 들여 ‘아영고지’라는 비문을 자필로 새겨 세운 것이다.

아곡리에는 몇 가지 옛 지명이 남아 있는데, 그중 봉암대는 삼국시대 때 문인들이 모여서 서화를 즐기던 곳으로 지금은 주춧돌만이 남아 있다. 방고대는 과거에 방을 붙여 발표를 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탑거리는 1m 정도의 아주 작은 탑이 있던 자리라고 전한다.

기암대는 옥녀직금, 검도암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하늘나라에서 음력 8월 15일이면 선녀들이 내려와 베짜기 시합을 했던 곳이라 하며, 아들을 못 낳는 여자가 이 바위에서 머리를 빗고 내려오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한다. 베틀바위라고도 한다. 수양전진계 기적비는 선함을 베푼다는 뜻에서 약 50여 년 전에 마을 사람들이 세워 놓았다.

종교 단체로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인 아곡교회와 기암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기타 마을회관, 공동 창고, 모정이 각 한 동씩 있다. 마을 뒤의 지리산 휴게소에서는 지리산 천왕봉과 연봉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뛰어난 명소이다. 마을 뒤로는 새목이재, 복성이재와 장삼이 등의 지명이 있으며 아막성 터가 뚜렷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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