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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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席里 |
영어음역 | Wolse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월석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소강춘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월석리는 월산리와 석동리의 이름을 따서 월석리라 하였다. 월산리는 본래 달뫼였다. 이 마을에는 대성산 자락에 자리한 큰 달뫼와 영월산 아래의 작은 달뫼가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산이 반달형으로 생겨 마치 솟아오른 달을 맞이하는 형상이다. 일설에는 마을 터가 높아 달이 다른 마을에 비해 먼저 비친다고 해 월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석동리는 동쪽과 서쪽의 계곡에 둘러싸인 마을의 지형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는 배의 형국이라 하여 돛단배를 상징하는 돛골이라 했다. 그러다가 독골로 변하여 독을 ‘돌 석(石)’으로 표기해 석동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름이 좋지 않다고 하여 돌 석(石)자와 음이 같은 ‘자리 석(席)’자가 좋겠다는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석동으로 바꾸어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월산리는 1300년경 대성산 아래 삼봉(三峰)의 『서당기(書堂記)』가 있어 이곳에서 성인을 배출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여기저기에서 많은 씨족들이 찾아들었다. 농토가 기름진 이곳을 찾아온 나주임씨, 서산유씨 12대손, 밀양 박씨 11대손이 정착함으로써 일찍부터 큰 마을을 형성하였다.
월산리는 본래 남원군 산동면 월산리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월산리와 석동리를 병합하여 월산과 석동의 이름을 딴 월석리에 편입되었다.
석동리는 1550년경 처음 단양우씨와 전주최씨가 터를 잡아 정착하였다. 그 후 나주임씨, 영천이씨, 수원백씨 등 각 성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석동리는 원래 남원군 산동면 석동리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월산리와 석동리를 병합하여 월산과 석동의 이름을 딴 월석리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월산리는 산동면 소재지로부터 3.7㎞ 지점에 위치하며, 국도가 마을 앞으로 지나고 있으며 장수군과 연결되어 있다. 석동리는 산동면 소재지로부터 4.7㎞ 지점에 위치하며, 마을 앞으로는 광주 대구 고속 도로와 국도가 지나고 있다.
[현황]
월석리에는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90세대, 161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남자가 76명, 여자가 85명이다. 월석리 전체 면적은 455㏊이고, 경지 면적은 밭이 6㏊, 논이 45㏊, 임야가 358㏊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