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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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燈-支石墓群 |
영어음역 | Deung Goindolgun |
영어의미역 | Deung Dolmens |
이칭/별칭 | 등골 고인돌군,등동 고인돌군,등동 지석묘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산정리 등동 마을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민석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산정리 등골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위치]
유적은 수지면에서 곡성군 고달면으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가 나타나는 등골마을과 초리마을로 가는 갈림길 중에서 초리마을 방향의 길가에 조성되어 있다. 유적은 대형 괴석의 고인돌군으로 1㎞ 내외의 반경 안에 1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마을 어귀에 5기, 도로 건너 양계장 옆으로 500여 m 떨어진 지점에 3~4기, 등골마을 입구에서 유암리로 도로를 따라 700여 m 떨어진 곳의 논둑에 1기가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하천의 방향과 나란하게 조성되어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87년과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1차 조사에서는 6기의 고인돌 덮개돌이 확인되었으며, 2차 조사에서는 4기가 추가되어 총 10여 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형태]
유적은 고인돌의 덮개돌로 추정되는 석재의 대부분이 땅에 묻혀 있어 받침돌과 하부 구조의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고인돌의 형식은 남방식 고인돌 중 뚜껑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고인돌 뚜껑돌의 규모는 가장 큰 것이 380×253×239㎝이다. 일부 고인돌에서는 성혈이 확인되었다.
[현황]
1차 지표 조사에서는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이 확인되었다고 하나 분명하지 않다. 고인돌은 현재까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나, 일부 고인돌 위에는 비석이 세워지기도 하고 제 위치를 벗어나거나 기울어져 있는 등 훼손이 진행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매장 풍습과 사회적 양태를 보여 주는 기준이 되는 자료이다. 등골 고인돌군은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