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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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偉 |
영어음역 | Kim Wi |
이칭/별칭 | 여기,만취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송만오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기(汝器), 호는 만취정(晩翠亭). 계림군 김균(金稛)의 7세손이고, 선략장군 김귀손(金龜孫)의 손자이며, 현령 김사걸(金士傑)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김위는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내외의 요직을 거쳐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 형조참의(刑曹叅議)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의 임진왜란 때에는 병든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호가하여 병기를 보수하고 왜적을 물리칠 계책을 올렸다. 만년에는 남원으로 낙향하여 거문고와 독서를 즐기면서 살았다.
[학문과 사상]
김위는 문예가 숙성하여 율곡 이이(李珥)와 교유할 때 외우(畏友)로 인정받았으며, 27세에 문과에 오음(梧陰) 윤두수(尹斗壽)와 함께 급제하였고, 우계(牛溪) 성혼(成渾)과는 도의로 사귀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