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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841
한자 朴起和
영어음역 Park Gihwa
이칭/별칭 백헌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성별
몰년 1597년연표보기
본관 밀양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밀성(密城). 호는 백헌(栢軒). 증조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조부는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박이(朴頤), 부는 박경(朴慶)이다.

[활동사항]

박기화는 성품이 굳세고 절개가 꿋꿋하였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학식이 깊었다. 농암(聾庵) 이현보(李賢輔)와 교제하였다. 정유재란을 당하여 남원성이 위험에 처하자 평소에 박기화의 기량을 알고 있었던 부사 임현(任鉉)이 편지를 보내 의병을 일으키기를 청하였다.

이에 집안 식구들에게 순국할 것을 맹세하고, 집안의 노비를 이끌고 남원성으로 달려가 무기고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수많은 적을 죽이며 전과를 올렸으나 수적 열세로 인해 패배하게 되었다.

성이 함락되자 아군의 병기를 적에게 넘겨줄 수 없다 하여, 병기를 화약고에 옮긴 뒤 그 위에 올라 앉아 불을 놓아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 이 날 정기원(鄭期遠)·이복남(李福男)·김경로(金敬老)·신호(申浩)·이덕회(李德恢)·이원춘(李元春)·오흥업(吳興業) 등 팔충신이 함께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마을의 선비들이 박기화의 충절을 추모하여 남원시 충렬사(忠烈祠) 동쪽에 사우(祠宇)를 세우고 제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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