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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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房元亮 |
영어음역 | Bang Wonryang |
이칭/별칭 | 후잠,만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후잠(后潛), 호는 만회(晩悔).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7세손이며,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수찬(修撰) 방귀온(方貴溫)의 종증손(從曾孫)이다. 참판에 증직된 방덕유(房德騟)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방원량은 조찬한(趙讚韓)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육촌 형 방원진(房元震), 육촌 동생 방원정(房元井)과 함께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아 여산(礪山)에서 회합하여 청주로 나아갔다.
과천 전투에서 50~600명의 적을 물리쳤으나 적과 화친이 이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통곡하면서 고향에 돌아왔다. 그 뒤 아버지의 정사(精舍) 월파정(月波亭)에서 두문불출하였다.
[상훈과 추모]
후에 행의(行誼)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고, 창평(昌平)·영동(永同) 등의 현령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방원량이 의병을 일으킨 사실을 춘파(春坡) 이유형(李惟馨) 형제가 기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