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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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應鼎 |
영어음역 | O Eungjeong |
이칭/별칭 | 문중,완원당,충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윤진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활약한 무신.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중(文仲), 호는 완원당(翫元堂). 현감 오하몽(吳下蒙)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574년(선조 7) 무과에 급제한 후 비변랑, 사헌부감찰, 형조정랑을 거쳐 1579년 군기시첨정으로 승진하였다. 1583년 이이(李珥)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 동인들의 미움을 사 흥덕현감으로 좌천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589년 도총부도사가 되고 같은 해 체찰사종사관, 해남현감, 벽단첨사를 거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양 대동강의 수탄장이 되어 왜적과 대치하게 되었다. 그때 선조가 평양에서 의주로 옮기게 되자 어영대장으로 호가하였다.
일본과 강화가 성립된 후 강화부사로 부임했고, 다시 북변의 만포첨사로 국경 수비를 맡았다. 1596년 경기방어사겸 수원부사로 있던 중 소인의 모함에 의하여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서울로 달려가 바로 훈련중군이 되었고, 이어 순천부사겸총병부문안사 전라도우방어사에 임명되어 순천으로 내려가 전라병사 이복남과 함께 남원성에 들어갔다.
그때 왜적이 5만 6천 명의 병력으로 남원성을 맹공격하여 마침내 성이 함락되자 큰 아들인 어모장군 오욱(吳稶), 셋째 아들 오동량(吳東亮)과 함께 삼부자가 화약에 불을 질러 같이 폭사하였다. 오응정과 그의 장남인 오욱, 둘째 아들 오직(吳稷), 셋째 아들 오동량, 그리고 오직의 아들 오방언(吳邦彦)을 삼세오충(三世五忠)이라 부른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렬이며, 가선대부 한성부좌윤에 증직되고, 1759년(영조 35)에는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가자되었다. 남원 충렬사, 금산 충렬사, 용안 충렬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