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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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太貴生 |
영어음역 | Tae Gwisaeng |
이칭/별칭 | 여인,정기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성미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의병.
[가계]
본관은 협계(峽溪). 자는 여인(汝仁), 호는 정기제(正己齊). 판서(判書) 태응진(太應辰)의 후손이며, 수문장(守門將) 태윤민(太潤民)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태귀생은 활과 말을 잘 다루었으며 계략이 담대하였다. 1555년(명종 10)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주부(注簿)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서제(庶弟)인 태천생, 아들 태상문(太尙文)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을 모아 여러 군진에 보냈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종족 수십 명과 가동 수백 명을 거느리고 남원성으로 들어갔다. 병사(兵使) 이복남(李福男) 등과 함께 힘을 합쳐 싸워 많은 적병을 무찔렀다.
이 싸움에서 태귀생은 적의 탄환에 맞아 죽었으며, 동생 태천생도 같은 날 전사하였다. 한편 조카 태우는 같이 싸우다가 적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으나, 끝내 굽히지 않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는 태귀생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