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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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文載 |
영어음역 | Yi Munjae |
이칭/별칭 | 자원,석동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경석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원(子遠), 호는 석동(石洞).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천묵재(天黙齋) 이상형(李尙馨)이다. 남원부 둔덕방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재질이 특이하여 동정에 절도가 있고 스스로 학문에 힘써 문사(文詞)만을 일삼지 않았어도 문장이 날로 이루어지니 선배들의 기대가 컸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업할 때 대단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사마시를 거쳐 유행(儒行)으로 천거되어 참봉이 되었다가 바로 사퇴하여 학문에만 힘써 행함을 위주로 하였다.
[학문과 사상]
『소학(小學)』과 『근사록(近思錄)』에 전념하였고, 주자(朱子)의 글을 손수 베껴 아침저녁으로 익히고 본받아 행동으로 옮겼다. 상수(象數)에 조예가 깊어 젊을 때에 원형과 조금도 틀림없는 기형(璣衡, 혼천의)을 만들었고, 『역경(易經)』·『황극경세(皇極經世)』 등을 깊이 연구하여 발명한 바가 많았다. 방기(方技)·술수(術數) 등도 관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뒤늦게 역학에 경도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