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2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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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溪集 |
영어음역 | Cheonggyejip |
영어의미역 | Collected Works of Cheonggy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강욱 |
[정의]
조선 중기 양대박의 시문집.
[개설]
양대박(梁大撲)[1543~1592]은 자가 사진(士眞)이고 호가 송암(松巖)·죽암(竹巖)·청계도인(淸溪道人) 등으로 사용하였는데 본관이 남원이고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저자의 시문을 4권 2책에 정사한 고본이다.
[편찬/발간경위]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활발한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저자가 군무 과로로 전주에서 죽음에 부친을 따라 함께 거의한 아들 양경우와 양형우가 평소 외우던 부친의 시 70여 편과 가장되어 있던 난고 중 100여 편의 시를 찾아내어 시집 2권으로 편차하였다.
[서지적 상황]
현재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과 규장각(奎1494, 1496)에 소장되어 있으며, 본서의 저본은 4권 2책의 봉인정사본(封印淨寫本)으로 규장각장본(奎4516)이다.
[형태]
4권 2책이며 필사자·필사년 미상의 정고본이다. 권수제는 『청계집』이고 판심제는 없다. 어미는 상화문어미(上花紋魚尾)이고, 반곽의 크기는 가로 18.1㎝, 세로 25㎝이다. 행수는 10행이고 한 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구성/내용]
권1~2는 시로, 형식 구분없이 다양한 시체의 시가 320여 수 실려 있다. 권1은 1572년 제술관이 되어 용만에 다녀왔을 때 접반사로 함께 나간 사신 일행 및 중국 사신과 수창한 차운시가 많으며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차운한 시가 눈에 띈다. 이 중 「청계」는 주지번이 향탕에 손을 씻은 뒤에 읽어야 한다고 극찬한 시이며, 「봉정송강상국」은 강계에 안치되어 있는 정철에게 보낸 시인데 이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송손곡객유룡성」은 이달을 전송하는 내용인데 「기아」에 편입된 시이다. 권2는 초간본에서 습유로 실었던 「상엽무풍자락」을 비롯해 정유일과의 차운시, 중국 사신과의 차운시가 실려 있으며, 60운의 장편시도 있다.
권3~4에는 문이 실려 있다. 권3에는 기, 제문, 주문, 론, 서 등 총 12편이 실려 있다. 정철에게 올린 평조신(平調信), 현소(玄蘇)를 참할 것을 청하는 「청참왜사서」는 정철이 춘추의 필법이라고 감탄했다는 주가 있으며, 유명한 「창의격문」은 유실되어 4구절만 전하고 있고, 「운암조전망의사제문」은 원문은 없고 저작경위에 대한 소주가 부기되어 있다. 권4의 「금강산기행록」은 1572년 5월에 20일 동안 금강산을 유람한 기행록으로서 노정과 풍경을 기록하고, 절과 누대와 다리를 지나면서 그 곳을 묘사한 시인들의 시를 소개해 놓았다. 또 한 편은 1586년 가을에 두류산을 유람하고 지은 「두류산기행록」이다.
부록으로는 중국 사신 한세능이 지은 「압강상증별송암」을 비롯하여 용만에 함께 간 사신 일행들의 차운시 15수가 실려 있다. 또 정탁(鄭琢)이 지은 「양공전(梁公傳)」과 제문 등 4편의 글이 실려 있다. 권말에는 1618년 조위한(趙緯韓)이 지은 발문이 있다.
[의의와 평가]
양대박이 지은 1000여 편이나 되는 시를 손수 편차하여 묶어 놓았는데 1591년 전주부윤(全州府尹)으로 나온 남언경(南彥經)이 빌려갔다가 임진란 때 잃어버렸으며, 저자도 곧 의병에 참가했다가 과로로 죽는 바람에 더 이상의 저술도 없는 상황이었다. 필사자 누군가에 의하여 국난에 순국한 저자의 시가 현재에 전해질 수 있게 되었음은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