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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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景浦口 |
영어의미역 | Ganggyeong Port |
이칭/별칭 | 강경포(江景浦)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고동환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포구.
[개설]
강경포구는 금강 본류와 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내륙으로 통하는 논산천, 강경천, 염천 등의 지류가 이어지고, 서해의 조류도 강경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해상 교통과 내륙 교통을 잇는 큰 포구로 번성하였다.
[형성 및 변천]
강경포구는 조선 말기 3대 시장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강경장을 배경으로 하여, 성어기인 3~6월의 4개월 동안은 하루 100여 척의 배가 드나들 정도로 큰 포구였다. 강경포구가 금강 연안에서 가장 큰 포구로 발달할 수 있었던 까닭은 강경포구의 지형 때문이었다. 강경포구 주위의 시진포(市津浦), 증산포(甑山浦) 등지에도 조수가 통했지만 이들 지역은 홍수나 조수로 인하여 침식되거나 토사 퇴적 때문에 대형 선박의 통행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강경포구의 거점은 화강암층이 탁월하게 발달하여 홍수 때 주변이 범람하여도 선박의 정박이 용이했다.
강경포구에서 유통되던 상품은 다양했다. 미곡 등 곡물은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에 공급되었으며, 도기·토기·철물 등의 수공업 제품, 전라도의 면포, 서해안에서 생산되는 어염 등의 해산물, 심지어는 함경도 원산에서 나는 북어까지 강경포구로 유입되어 유통되었다. 이렇듯 강경포구는 금강 유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전국으로 반출하는 핵심 시장이었으며, 동시에 전국 각지의 상품이 반입되어 금강 수로를 통해 다시 금강 주변 지역으로 분배되는 전국 포구 시장권의 중심 시장이었다.
그러나 1911년 호남선 철도의 대전~강경 구간이 개통되고, 이듬해 군산선(익산~군산)이 개통됨으로써 하항으로서 갖는 강경포구의 상업 기능은 차츰 호남선에 넘어가게 되었다. 또한 1931년 장항선이 개통됨에 따라 강경포구는 충남 서남부의 상권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강경포구는 현재 극히 제한된 지방의 소시장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관련기록]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은진·강경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육지와 바다 사이에 있어 금강 남쪽 들 가운데 하나의 큰 도회가 되었다. 바닷가 사람과 산골 사람이 모두 여기에서 물건을 내어 교역한다.”라고 하여, 강경포구가 전라도와 충청도 남부 지역을 연결하는 상품 유통로로 중시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