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0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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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師峰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준호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심곡리와 동두천시 불현동의 경계에 있는 산.
[명칭 유래]
조선의 세조는 과거를 후회하고 말년에 산수를 벗 삼아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찾고 수렵에 취미를 가졌다. 하루는 신하들과 함께 칠봉산에 사냥을 나왔다. 수렵할 때는 사방위 중에서 어느 한 곳을 정하여 시사(示射)를 하고 그 다음에 사냥이 시작되는데, 이 관례대로 왕은 칠봉산에서 동북방으로 마주보이는 왕방산의 주봉(主峰)을 겨누어 활을 쏘았다 하여 그 주봉을 국사봉(國射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광여도(廣輿圖)』 등에는 국사봉(國祠峰)으로 표시되어 있다.
[자연 환경]
국사봉의 높이는 해발 755m이며, 산능선은 남북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다. 남동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현황]
소요산 종주 산행을 할때 통과하는 산 중 하나이나, 군부대가 정상에 있고 교통편과 이정표 등이 부족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한편, 국사봉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국사봉은 산세가 험하고 수풀이 우거져 있어 온갖 산짐승들이 사는 경관이 빼어난 명산이었다. 오랜 옛날 이 산 아래 마을에는 인근 고을까지 명망을 떨치는 뼈대 있는 가문에 참한 규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 규수의 얼굴에는 어쩐 일인지 늘 수심이 어렸고 가끔 꿈을 꾸고는 며칠씩 심하게 앓곤 하였다. 딸이 아픈 원인을 알 수 없던 규수의 어머니는 유명하다는 무당을 집으로 불렀다. 규수의 신수를 점쳐 본 무당은 그 규수의 앞날이 불운하다는 걸 알았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규수는 무당의 말대로 혼인 전날 밤 죽고 말았다. 딸의 죽음을 애통해 하면서 모든 혼숫감을 시신과 함께 국사봉에 묻어주었다.
그 후 국사봉으로 도망치는 모든 짐승들은 처녀의 혼령이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사냥꾼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곳이 동물들의 낙원이 되었음은 물론 마을까지도 지켜주어 번성하였다고 한다. 이후로는 이 혼령을 선각시라 하여 국사봉에 오를 때에는 항상 경건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하였다고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