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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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麟坪大君墓-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산46-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익성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622년 12월 10일 - 인평 대군 이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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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58년 5월 13일 - 인평 대군 이요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658년 8월 2일 - 인평대군묘및신도비 조성 |
이장 시기/일시 | 1693년 7월 17일 - 광주 춘궁동에서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산46-1로 인평대군묘및신도비 이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2년 06월 05일 - 인평대군묘및신도비 경기도 기념물 제130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인평대군묘및신도비 경기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인평대군묘및신도비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산46-1 |
원소재재 | 인평대군묘및신도비 원 소재지 - 경기도 광주 춘궁동 |
성격 | 묘|신도비 |
양식 | 원형 단분 합장묘|이수 방부형[신도비] |
관련 인물 | 인평 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1622~1658]복천 부부인(福川府夫人) 오씨(吳氏)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봉분 직경 5.6m|묘역 면적 431㎡ |
소유자 | 전주이씨 인평대군파 종중 |
관리자 | 전주이씨 인평대군파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기념물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평 대군 이요의 묘와 신도비.
[개설]
인평 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1622~1658]는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자는 용함(用涵)이며, 호는 송계(松溪)이다. 인조의 셋째 아들이자 효종의 동생으로 1630년 인평 대군에 봉해졌다. 1640년 볼모로 청나라에 갔고, 1650년부터 네 차례나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외교관이었다. 저서로 『송계집(松溪集)』·『연행록(燕行錄)』·『산행록(山行錄)』 등이 있다. 사후 효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배위 복천 부부인 오씨(福川府夫人吳氏)는 관찰사 오단(吳端)의 딸이다.
[위치]
포천시에서 국도 43호선 도로로 신북면 삼거리까지 나아가 ‘이해조길’로 좌회전하여 신북교를 건너 진행한다. 이어 신평 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50m 가다가 좌측의 골목길로 약 200m 올라가면 인평대군묘및신도비가 나타난다. 주소지는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산46-1번지이다.
[변천]
인평 대군이 1658년 5월 13일에 세상을 뜨자 그해 7월 13일 발인하여 8월 2일 경기도 광주 춘궁동의 능창 대군 묘소 옆에 안장하였다. 이후 숙종이 1693년 7월 17일 포천의 왕방산 두 번째 능성이[抱川旺方山二岡]로 이장하도록 허락하여 그해에 기존의 석물과 함께 포천의 현 위치로 옮겼다.
[형태]
인평 대군 묘역은 크게 2단으로 구획되어 상단에는 봉분·묘표·혼유석 등을, 하단에는 상석·향로석·동자석·망주석·문인석·장명등·배례석 등을 갖추었다. 봉분은 부인 오씨와 합장한 단분으로 호석을 둘렀으며 봉분 외곽에 곡장을 조성하였다. 묘역 내 석물은 왕족의 무덤답게 균형미가 뛰어나고 조각 솜씨가 우수하다.
[금석문]
묘역 아래에 위치한 이수 귀부형(螭首龜趺形) 신도비는 1658년에 건립되었다. 신도비 앞면에는 이경석(李景奭)이 짓고 오준(吳竣)이 쓴 비문이 인평 대군의 처남 오정일(吳挺一)의 전액과 함께 새겨져 있다. 신도비 뒷면은 1659년에 새겨진 부인 오씨의 비문이다.
[현황]
인평대군묘및신도비는 1992년 6월 5일 경기도 기념물 제13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제작한 석물은 제작 시기가 인평 대군 치제문 비(麟坪大君致祭文碑)에 “이장 시 옛 석물도 옮기도록 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1658년이 확실하여 17세기 중반의 표준 작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