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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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興君墓界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산18-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익성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604년 - 인흥군 이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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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51년 - 인흥군 이영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686년 - 인흥군 묘계 비 건립 |
현 소재지 | 인흥군 묘계 비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산18-6 |
성격 | 비 |
양식 | 옥개 방부형 |
관련 인물 | 인흥군(仁興君) 이영(李瑛)[1604~1651]|낭선군(郞善君) 이우(李俁) |
재질 | 대리석[비]|화강암[옥개석] |
크기(높이 | 총 높이 282㎝|비신 높이 150㎝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흥군의 묘계 비.
[개설]
인흥군(仁興君) 이영(李瑛)[1604~1651]은 조선 후기 왕족으로 자는 가온(可韞)이고, 호는 취은(醉隱)·월창(月窓)이다. 선조와 정빈 민씨(靜嬪閔氏) 사이에 태어나 7세 때인 1610년(광해군 2년) 인흥군에 봉해졌다. 1645년 종부시·사옹원 도제조가 되었고, 1649년(효종 즉위년) 사은사로 청나라에 가서 국방 문제와 척화파 기용에 대한 외교 문제를 해결하였다. 시호는 정효(靖孝)이다. 묘계(墓界)란 조선 시대에 품계에 따라 정한 무덤의 구역을 말한다.
[건립 경위]
인흥군 묘계 비(仁興君墓界碑)는 낭선군(郞善君) 이우(李俁)가 1686년에 이곳이 아버지 인흥군의 묘역임을 표시함과 동시에 훼손을 막기 위해 세웠다.
[위치]
포천시에서 국도 43호선과 국도 37호선을 타고 영중면 방면으로 가다가 영중 중학교를 조금 지나 우측으로 나가는 작은 길로 ‘능원 낚시터’까지 진행한다. 낚시터 저수지 위쪽 인흥군 묘 입구의 밭에 비석이 있다.
[형태]
옥개 방부형(屋蓋方趺形)인 비석의 전체 높이는 282㎝이고, 재질은 대리석이다. 옥개석(屋蓋石)은 화강암이다. 총 높이는 282㎝이고, 비신 높이는 150㎝이다.
[금석문]
인흥군 묘계 비에는 전서체의 제목과 한글 고어 및 간기 등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4면에 북·남·동·서면의 순서로 “대명 조선국 왕자 묘소 영평 치동 양문 탑동(大明朝鱻國王子墓所永平治東梁文塔洞)”이라 전서하여 이곳 영평현 치소의 동쪽 양문리 탑동에 조선국 왕자의 묘소가 위치함을 알리고 있다.
또 북쪽 비면의 하단에는 “이 비가 극히 녕검니 심도 사람이 거오디 말라”라고 쓰여 있는데, “이 비가 극히 영검하니[영묘한 위력이 있으니] 생심(生心)[어떠한 생각으로라]도 사람이 거오(倨傲)[거만스럽게 낮추어 보지]하지 말라”는 경고성 한글 고어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비석의 남면 하단에 “숭정 병인 동 낭선군 우 서단(崇禎丙寅冬朗善君俁書丹)[숭정 병인년 겨울에 낭선군 우가 비석의 바탕 글씨를 쓰다]”라는 명문이 있어 1686년 겨울에 비석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1686년에 새겨진 한글 고어는 한글의 음운 변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