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340 |
---|---|
한자 | 梁文里 |
이칭/별칭 | 돌골, 독글, 돌글, 독흘, 양골, 양문, 양문역말, 역말, 역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관휴 |
개설 시기/일시 | 1912년 - 영평군 군내면 양문리로 행정구역 정비 |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영평군 군내면 양문리에서 포천군 영중면 양문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5년 08월 15일 - 포천군 영중면 양문리 일부가 북한 관할로 들어감 |
변천 시기/일시 | 1954년 11월 17일 - 포천군 영중면 양문리 행정권 수복 |
변천 시기/일시 | 2003년 10월 19일 - 포천군 영중면 양문리에서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로 개편 |
법정리 | 양문리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
성격 | 법정리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양문리는 영중면이 관할하는 6개 법정리 중 하나로 면의 중앙에 위치한다.
[명칭 유래]
포천천과 영평천이 합류하는 곳이므로 돌곡, 독글, 돌글 또는 독흘, 양골, 양문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 평구도 찰방(平丘道察訪)에 딸린 양문역이 있어서 양문역말, 역말, 역촌이라고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고구려 때는 영평군의 옛 고을이던 양골현(梁骨縣)의 터이다. 1912년 행정 구역은 영평군 군내면 양문리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양문리 일부를 거사리에 떼어 주고 성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양문리라 하고 포천군 영중면에 편입하였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38선 이북 지역인 양문리 일부가 북한 치하에 들어갔다가 6·25 전쟁 때 실지(失地)를 회복하여 1954년 11월 17일 행정권이 이양되었다. 2003년 10월 19일 포천군이 도농복합시로 승격하면서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양문리는 관모봉[583.9m] 서쪽에 있는데, 서쪽 경계에서 포천천이 흘러 영평천으로 합류한다. 동쪽의 관모봉 산지를 제외하면 마을 대부분이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국도 37호선이 양문리 앞을 지나간다. 영중면사무소가 위치하며, 교육 기관으로 영중 중학교가 있으며 그 주변으로 마을이 크게 형성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 나분들·능원·연당 마을 등이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구석기 시대로 알려진 양문리 유적과 포천시 향토 유적 제28호로 지정된 인흥군 묘 및 신도비(仁興君墓및神道碑), 인흥군 묘계비(仁興君墓界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