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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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福仁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고소성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계형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 박복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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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박복인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몰년 시기/일시 | 1911년 10월 16일 - 박복인 사망 |
출생지 | 박복인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고소성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박복인(朴福仁)[1879~1911]은 1879년 경기도 영평군 서면 고소성리[현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고소성리로 1914년 영평군이 포천군에 병합됨]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연기우(延基羽) 의병 부대에 가담하였다. 연기우는 강화 진위대 부교로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을 결성하였다. 1908년 11월 박복인은 연기우 의병 부대에서 활동하던 중, 일제의 앞잡이로 세금을 징수하면서 밀정 노릇을 하던 궁촌리(宮村里) 이장 김치범(金致範)을 체포한 후 경기도 영평군 서면 산내정리 산속으로 데려가 처단하였다.
이어 1909년 10월 홍경칠(洪敬七)과 함께 경기도 영평군 하리면의 김규묵(金圭默)에게 벼 열두 섬과 현미 한 석을 거뒀다. 같은 해 11월에는 경기도 영평군 남면 주원리 이시영(李時寧)에게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1년 9월 15일 경성 지방 재판소에서 소위 고살(故殺) 및 강도죄로 교수형을 선고 받고 항고하였으나 1911년 10월 6일 경성 공소원과 10월 16일 경성 고등 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1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