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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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峰山城 |
영어공식명칭 | Hwabongsans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노호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백영종 |
조성|건립 시기/일시 | 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 - 남쪽을 견제할 목적으로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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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09월 30일 -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58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화봉산성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화봉산 정상부 |
원소재지 | 화봉산성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화봉산 정상부 |
성격 | 산성 |
양식 | 포곡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915m[길이]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세종특별자치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58호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노호리 화봉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포곡식 산성.
[개설]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노호리 묘기마을 북쪽의 화봉산(華峰山)[252.1m] 정상부에 위치한 산성이다.
[건립 경위]
화봉산성 정상부에서는 북쪽으로 노고봉산성과 애기바위산성, 서쪽으로는 성산성과 황성골보루 일대의 전망이 좋다. 남쪽으로는 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금강 건너로 대전광역시 대덕구 일대가 보인다. 따라서 남쪽을 견제할 목적으로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노호리 산1~산2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화봉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남쪽 계곡을 감싼 형태의 포곡식 산성이다.
[형태]
화봉산성은 절안골을 감싼 능선 바깥을 내외협축의 토루(土壘)[방어 겸 생활을 하기 위하여 둘레를 흙으로 쌓아올려 지은 울타리]로 쌓고, 계곡의 저습지를 가로지르며 성벽을 연결한 평면 삼태기 모양이다. 지형은 북고남저이며, 남쪽의 낮아진 평탄부에 묘고사지(妙高寺址)가 있다. 남벽은 이 묘고사지 바깥쪽으로 지난다. 묘교사지 아래에 있는 계곡부는 계단상의 논으로 이루어져 있어 성벽선이 불확실하다. 산성의 동쪽 사면은 6·25전쟁 때 월남한 정착민들의 집단 묘역이 조성되면서 성벽 일부가 훼손된 상태이다. 북벽과 서벽은 인적이 거의 닿지 않아서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화봉산성의 둘레는 기존의 2000년도 조사에서는 약 815m로 보고되었으나 2005년 정밀실측을 실시한 결과 이보다 더 긴 약 950m가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현황]
화봉산성 성벽의 축조방법과 구조를 살펴보면 서쪽부·북쪽부·동쪽부의 능선 상에 토루로 되어 있고, 남쪽의 계곡부 쪽으로는 석축부가 일부 잔존하고 있는 등 토축과 석축이 혼재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축조 방식이 지형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성벽이 통과하는 가장 낮은 지점이자 성내에서 가장 많은 물이 모이는 계곡이 방어 및 자연적인 재해에 있어 취약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흙보다는 돌을 이용하여 성벽을 축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성 안에서는 주로 묘고사지 주변에서 토기 조각, 자기 조각, 기와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은 통일신라 후기~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는 것들이다. 따라서 대체로 화봉산성은 통일신라 후기~고려시대 초에 축조된 뒤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살펴보면 통일신라 후기 당시 지역 호족세력에 의하여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