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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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將軍面全州李氏德泉君派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있는 전주 이씨 덕천군파 집성촌.
[개설]
세종특별자치시와 공주시 일대에 거주하는 덕천군파는 전주이씨 100여 파 중 가장 번성한 문중이다. 장군 덕천군사우가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를 중심으로 덕천군의 부조묘와 묘소에서의 제향 의례와 용현리의 동계 문서가 전한다.
[용현리 동계문서]
전주이씨 덕천군파 동족 조직 문서로는 용현리의 동계 문서가 있다. 초기 회원 명단에 등재된 59명 중 전주이씨가 50명이다. 기록이 대부분 없어져 동계의 창설 과정을 상세히 알 수 없지만 1922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하여진다.
동계 자산은 회원에게 쌀 한 말씩을 신입금으로 받아 동물(洞物)을 구입하고, 이것을 애경사(哀慶事) 때 대여하여 준 다음 비용을 받아 적립하여 불려 나갔다. 이렇게 늘어난 자산을 대부하고 이자를 받아 자산에 보태었다. 당시의 동물은 교자[가마], 전립[대형 천막] 4개, 흑의(黑衣) 9벌 등이었다.
동계의 운영 원칙을 기록한 ‘동계입의절목’에는 매년 유사를 2명씩 정하였고, 음력 정월 보름을 동계일로 정하여 동계 총회를 열고, 총회 날에는 떡과 술을 빚어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었다. 동계에서 이장을 선출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도 용현리의 동계는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그 외에도 애림계(愛林契)가 있었다. 애림계는 1935년에 창설하여 가구마다 40전을 거출(醵出)[같은 목적을 위하여 여러 사람이 돈을 나누어 냄]하였다고 한다.
[덕천군 부조묘 제향]
태산리에는 덕천군의 묘소와 부조묘가 있다. 1722년(경종 2) 사우(祀宇) 중수를 발의한 이진망(李眞望)은 「시조덕천군사우중수서」에서 후손들에게 사우를 관리하고 조상을 어떻게 숭모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을 자세하게 남겼다. 이는 오늘날까지 후손들의 문중 활동에 큰 가르침이 되고 있다고 한다.
지침을 보면 제전(祭田)을 마련하고 사우 수직인(守直人)[건물이나 물건 등을 맡아서 지키는 사람]을 두며, 종인(從人)[남에게 종속되어 따라다니는 사람] 중에서 유사 2인을 선정하여 사우(祀宇)의 제반사를 주관하도록 하되 1년마다 교체하기로 하였다. 비록 외손이나 타인이라 하더라도 사우 근처에 사는 사람은 묘우(廟宇)[신위를 모신 집]의 수리와 봉례지절에 함께 전심전력하는 등 공동체적인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덕천군 부조묘와 사우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에 묘제를 봉행한다. 또 음력 11월 10일에는 덕천군사우제, 군부인사우제는 매년 음력 11월 21일에 각각 봉행한다.
부조묘(不祧廟)[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 주변에는 강당과 추모전, 송덕비, 홍살문 등이 조성되어 있다.
2010년 종재(宗財)와 송림군 종회에서 재물을 내어 건립한 종손의 주택이 있고, 이 주택에는 종손이 거주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장군면 전주이씨 덕천군파는 전주이씨 100여 파 중 가장 번성한 문중이다. 장군면의 태산리, 송학리, 용현리, 용암리와 장군면과 인접한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의 가산리, 중흥리, 그리고 계룡면 일대에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